에필로그
길을 떠나며 쉬운 여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번 함께 했던 여행은 20여 일. 그땐 좀 짧아서 아쉬웠던 것 같아, 이번 여행은 조금 더 길게 가자는 의견이었다. 계획을 하다 보니 28일이었고 일정의 경중을 따져 중간에 크루즈를 8일간 넣는 것으로 나름 시간과 체력의 안배를 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조금씩 삐걱거렸던 길 위의 시간들. 돌아가면서 감기 몸살을 앓았고, 꼭 보고 싶었던 곳을 들리지 못했던 곳도 있고, 돌아와서 후배님들은 후유증이 심했다. 한 달여 몸을 추슬러야 할 만큼 아팠다. 우리들의 나이가 이만큼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준 ‘길 위의 시간들’. 다음 또 같이 길을 떠나게 된다면 좀 더 편안한 여행으로 짧은 시간을 여러 번 다녀오는 것으로.
로마의 북적이고 산만하고 웅성거렸던 거리, 피렌체의 우아한 유럽 문화의 진수, 이탈리아 남북의 문화의 차이,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를 지나며 아름다운 바다와 석양과 떠 있는 섬들 사이에서 황홀하게 자연의 경이로움에 취했던 시간. 쇠락해 가는 나라, 그리스와 그 안의 아테네에서 만났던 역사의 잔해. 기대 이상으로 활력이 넘쳤고 풍성한 추억이 제일 많아, 짙은 향이 오래가는 튀르키예.
28일, 4개국, 20여 개의 도시, 23 꼭지의 글, 2천여 장의 사진, 누런 봉투에 가득한 그날의 메모와 동네 지도, 엽서, 쓸만하다고 생각되어서 넣어 두었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은 한번 만나는 것이고, 인생 속에서 휙 지나가는 작은 부분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나가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기억의 매듭을 지어놓고 싶었다. 어느 날 매듭이 느슨해지면 다시 한번 글들을 찾아보고, 사진을 들추어 보며, 매듭을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간이 천천히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느 오후, 이쯤에서 우리들의 두 번째 유럽 여행기 “함께하는 길 위의 시간들”을 마친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28일 동안 길 위에 함께하며, 마음 부대끼는 일들도 있었고, 재밌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도 많았다.
이 모든 시간들이, 장면들이, 에피소드가 앞으로 우리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을 확신하며 매듭 안에 묶어둔다.
다음 여행지는 아직 정해 지지 않았다. 또다시 함께 길 위를 걸어갈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그 어떤 경우가 되었더라도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글보다는 나의 기억의 매듭들을 지어 놓는 작업으로 내 소임은 다했다는 생각이다. 누구에게는 지루했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진부한 인포였을 수도 있으며, 또 누구에게는 공해 같은 글쓰기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누구는 같은 공간에 있었던 추억만으로도 공감하며 반갑게 고개 끄덕이는 부분들도 있지 않았을까.
글을 마치며, 길 위에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우리들을 다시 만난다. 좋은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사진 한 컷으로 다 담지 못하는, 한 꼭지의 글로는 충분히 표현이 안 되는, 그러기에 눈에 담아 두어야 하는, 여행의 이유. 두 팔 벌리고 가슴 깊이 안아본다. 세상은 참 넓고 끝없는 호기심은 아직도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또 달뜨게 한다. 열기구 안에서 하늘을 날고, 보트를 타며 스피드와 파도를 즐기고, 푸른빛 호수에 발을 담그며 상념에 젖고, 먼바다의 분홍빛 석양을 바라보며 탄성 울리며 감탄하는 일흔 언저리의 우리들. 인생의 책장을 서서히 넘기며, 남아있는 페이지가 몇 장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돌아 온 곳은 온통 가을색을 띠며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인생의 가을에서 함께 했던 길 위의 시간들. 커다란 파도가 되어 가슴 속의 한 매듭이 되었다.
그렇기에 오늘 오후, 나는, 우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감사하며 그대의 따뜻한 손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