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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Mar 18. 2023

말할 수 없는 비밀

출간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브런치에는 유명한 출간작가와 출간 작가와 출간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에는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종이책을 손에 거머쥔 사람들과 출판사와 첫 계약을 마친 작가들의 간증이 넘친다.


나는 어릴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무렵 TV에서 세일러문과 슬램덩크가 한국어 더빙으로 방송되었다. 은비까비만 알고 살던 초등학생에게는 말 그대로 컬처쇼크였다. 만화대여점에는 200원을 내면 만화책 1권을 대여해 줬다. 일주일에 천 원이면 신일숙과 천계영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울고 웃으며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중학교2학년 때까지 만화를 그렸는데  재능이 없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서 관둬버렸다.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인물의 비율과 대칭이 좋아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이 글러먹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림이 아름답지 않아도 인물의 대칭이 피타고라스의 황금비율을 따르지 않아도 만화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글에는 소질이 있었다. 조그만 초등학교에서는 방귀 좀 뀌는 어린이었다. 백일장이 열리면 무조건 상을 받았다. 나는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글짓기 과외를 시켜주셨다. 친구들이 국영수를 배우고 태권도 학원을 다닐 때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어이없게 끝나고 말았는데 그건 언니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작가가 되면 굶어 죽기 십상이고 굶어 죽지 않는다 해도 아주 늙어서야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중학생 언니가 보기엔 작가나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루종일 방구석에서 배를 깔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생이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대한민국 중학교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나는 먹고사는데 최적화된 인간으로 자랐다. 적어도 남에게 손 벌리고 살진 않아도 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럴싸한 인생이 된 줄 알았건만 20년 전에 땅에 파묻어 이미 썩어 없어진 줄 알았던 꿈들이 좀비처럼 되살아나 속삭인다. 삶은 '그런 게' 아니라고. 이제 좀 배가 부르니 또 쓸데없는 생각 한다 욕먹을까 두려워 가족에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겼다. 출간 작가가 되고 싶다. 그냥 작가 말고 잘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 브런치가 나와 같은 사람들의 대나무숲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같이 외쳐보자.


"인세로 먹고사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글쓰기의 재능은 생각보다 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는 것과 달리 작가가 되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엄청난 재능을 지녔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 창작을 관두고 사라져 버린 사람들도 봤고 아주 평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 프로 작가로 성공한 사람들도 봤다.

-데이먼 나이트,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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