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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Aug 23. 2023

너 말고도 할 사람 많으니 그만두라고요?

이어지는 이야기


공무원은 갑질을 하는 일부 민원인들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물론 사무실에 다른 직원도 있고 청원 경찰이 같은 건물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모진 욕설과 차마 입에 담기도 무서운 협박,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물리적 폭행은 결국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공무원의 권익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면 그것이 마치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것처럼 들릴 때 있다. 그래서 공무원의 고충이나 불이익을 말하면 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대신
- 철밥통인 주제에
-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 연금으로 편하게 사는 주제에
끝으로 너 말고도 할 사람 많으니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는 말로 묵살을 해버린다.

나는 이런 말들도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은 쉽고 간단하다. 생각하고 헤아리고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면 때리고 내 편이 아니면 없애고. 그런 식으로 공포와 굴종을 얻어낸다.




너 말고 할 사람 많으니 꼬우면 그만두라는 말은 타인의 고통에 대놓고 무감각하다. 나는 그런 말을 정치인이 스스럼없이 언급했다는 것에 적잖 놀랐다. 주4든 월급이든 연금이든 그건 껍데기다. 대다수의 공무원은 지나치게 과한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공무원의 보수와 연금 체계의 붕괴는 명백하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 역시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이다. 이게 알맹이다.


꼬우면 나가라는 식의 문제해결은 해결이 아니라 회피다. 언론과 정치는 자극적인 단어들로 불안을 조장하고 분쟁을 부채질한다. 갈등이 고조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피에 흔들리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지혜다.





세상은 미래세대가 배워야 하는 것이 코딩이고 인공지능이고 AI기술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리타분한 인간이라 시대가 바뀌어도, 4차 산업이 아니라 4차 할아버지산업이 와도 인류가 대물림하여 가르쳐야 하는 것은 친절이고 배려이고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좀 걸리고 돌아가더라도 폭력 없이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것, 나의 사사로운 이익이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는 것, 싸워야 할 때는 건강하게 싸우고 올바르게 화해하는 법, 싫어하는 사람과도 한 공간에서 지내는 법, 의견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는 법, 분명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과 포기하지 않고 그 방법을 물색하는 것.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 한 서로의 목을 노리고 물어뜯고 죽이는 야만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장비가 늘어간다. 민원대에는 더 큰 가림막이 설치되고 데스크마다 각종 녹음 기구와 녹화장치, 바디캠이 작동한다. 다 같이 쥐고 있는 칼을 내려놓으면 끝날 일인데 더 크고 무거운 방패를 만들 생각만 한다. 참말로 모순(矛盾)이 따로 없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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