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로 쓰면 명확해진다, 고 나는 믿지만, 최근에는 C언니와 대화하며 내 언어가 추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 내 언어가 추상적이라는 표현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관계에서의 규칙을 정하고 요구사항을 말하는 방식에 관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3.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 [이렇게 해줘.] 라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말하지 않는다. 나의 사고의 흐름을 전부 공유하고, 그 사람이 그 사고를 내면화해서 온전히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온 결론에 납득해주기를, 온전히 느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상대에게 부탁하거나 상대의 행동에 의문이 들면 그 사고의 흐름을 설명해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4. 그러나 나의 방식은 매우 희귀한 것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보통은 그럴 만한 정신적 에너지도 없고 그게 왜 필요한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로 그게 워킹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내 사고는 내 사고기 때문에 나에게는 당연하고, 그래서 상대에게 사고의 흐름을 아무리 설명해도 생략이 많고, 결국 비약으로 느껴지는 것도 많을 것이다. 남이 내 사고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고, 애초에 나처럼 사고의 흐름을 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잘 없다. 그리고 사고의 흐름을 언어화 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니 내가 사고의 흐름을 계속 물어보면 혹자는 공격적으로 따진다고 생각이 들고 힘들 수 있다.
5. 그래서 보통은 관계에서 규칙을 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규칙을 묵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표현함으로서 정신적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서로 예의를 지키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6.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것은 없다는 걸 안다.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받으려는 그 노력에서 파생되는 그 숱한 말들을, 숱한 표현들을 나는 아름답다고 느끼고, 또 사랑한다.
7. 물론 대다수는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음]이 디폴트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과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배려하는 방식임을 알았으니까. 그렇지만 원하는 사람과는,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노력을 지속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