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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 Jul 24. 2021

엄마의 두 번째 결혼

내가 가장 외롭다고 느꼈을 때

  비가 내리던 아침 출근길, 아직 미숙한 내 운전을 봐주겠다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나에게 왜 화를 내냐고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난 지 1년도 안된 사람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는 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영어도 못하고, 몸도 성치가 않은 사람이 말이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거실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며 갑작스럽게 맞은 과부 인생에 대한 한탄과 시집살이의 부조리함 따위를 쏟아내곤 했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내 마음속에서 자랐어야 할 로맨스의 싹은 부숴놓더니, 그 잔해들을 알뜰히 자기 안에 챙겨놓은 모양이다. 인생의 풍파를 그렇게 온몸으로 맞았다면서 도대체 어떻게 엄마 눈에는 아직도 세상이 저리 꽃밭일 수 있을까?


  엄마는 아저씨가 캐나다에 집을 몇 채 가지고 있고, 임대료를 받는다고 했다. 아들 한 명은 누가 들어도 알만한 회사를 다닌 다나 어쨌다나. 엄마는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변할지도 모르는 일을 앞두고선 스스로 뭘 어쩌겠다는 건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사람 하나만 보고 그 먼 곳을 간다는 게 너무 무모하다 말했다. 인생이 어찌 될 줄 알고, 사람 마음이란 게 그리 오래가지 않다는 건 엄마가 더 잘 알지 않느냐고. 그 아저씨도 아빠처럼 갑자기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냐는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거실 앉아 평소에 쓰던 계산기는 넣어두고 나 보란 듯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무슨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듯 한국에 있는 몇 달간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오빠는 아저씨가 꽤 진중하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 같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저리 좋다는데 우리가 반대할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한 번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아귀찜 맛집에 우리와 아저씨를 데려간 적이 있다. 그 아저씨는 한두 입을 먹고는 맛이 별로라며, 훨씬 맛있는 집을 안다는 소리를 해댔다. 너희 엄마는 아직도 너무 순수하고 알려줘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라 덧붙이며.


  얼마 후 아저씨는 먼저 캐나다로 떠났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서 엄마도 캐나다로 아저씨를 따라갔다. 엄마는 그곳에서 아저씨와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 캐나다의 교회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며 흰 원피스에 화관을 쓴 사진을 보내주었다. 또 하루는 꽃이 가득한 정원 사진을 보냈다. 아저씨가 빅토리아 섬에 있는 부차드 가든을 데려다줬다고, 정말 환상적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엄마의 삶에도 꽃이 꽤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듬해, 엄마의 행복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추석 연휴에 맞추어 홀로 밴쿠버행 왕복 항공권을 끊었다.


  나의 여행 목적은 이뤄지지 못했다. 엄마는 내 일정보다 이르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 사람이 전처와 이혼을 한건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자신은 사별이라 그 사람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이번 건 캐나다에서만 혼인신고가 된 거라 한국에선 상관이 없다고 했다. 엄마에게 일러줄 것이 참 많다고 했던 아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리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없냐는 타박을 하곤 했단다. 그곳에서의 삶은 금방 외로워졌단다. 엄마는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는 말이 생각났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여행의 이유는 사라졌지만 표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저렴하게 예매하느라 수수료가 비쌌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연락해서 내 여행 가이드를 부탁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제발 그 아저씨 소리 좀 집어치우라고 짜증을 냈다. 그렇게 처음으로 혼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11시간 정도가 지나 밴쿠버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해치우고 나니 얼핏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가겠노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밴쿠버 가을의 따뜻한 날씨는 흔치 않은 사연에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온 나를 환대해 주는 것 같았다. 공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나무를 보고 있었는데, 거기에 매달려 열매를 나눠먹는 귀여운 너구리 가족을 만났다. 연유가 어찌 되었건 여길 와보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빅토리아 섬이었다. 섬에 들어가기 위해 페리를 탔다. 그때부터 날이 흐려지고, 나는 온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날이 더 어두워졌다. 짐을 풀고선 일단 뭐라도 구경해야겠다며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의사당을 보러 가겠노라 시내를 걷는데 강풍이 불었다. 꽃이 환상적이라 들었던 부차드 가든을 상상하며 원피스를 입었는데, 젠장. 입에선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기를 달래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보상심리로 혼자서 3인분의 음식을 시켰다. 내 식욕이 떨어진 탓인지 음식은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 포장을 하겠냐는 웨이트리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금세 한바탕 비가 내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항상 내가 기대하는 순간들은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툭 떨어지면서 내 눈을 건드렸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니 하늘에도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선 항구 앞에 서서 물방울이 수면에 후드득 떨어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난 여기에서 왜 홀로 이러고 있을까.  


  딸은 엄마의 인생을 닮는다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나는 그 말이 무서웠다. 엄마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타지에서 느낀 감정들이 엄마의 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두 번째 결혼이 행복하길 엄마보다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삶 속에서 만발한 꽃과 어울리는 장면들을 담아가고 싶었었다. 사실은 사랑에 기대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그런 마음의 싹을 틔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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