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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Feb 04. 2022

숲속의 음악회

 “어머, 이 사진 좀 봐요!”


 남편에게 보여준 사진은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보내주신 것으로, 5살 때,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니 유치원에서의 친구 생일 파티인 것 같은데 어쩌다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려다 기회를 놓쳐 버렸다. 바쁜 시간 속에 이런 일상들도 과거가 되어버린다.

 

 야마하 음악교실에서 음악을 접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집에 피아노도 없었고 ‘건포도 빵’이라는 단순한 리듬만 알 뿐인데 신기했다. 그래도 친구들 틈에서 말이 좀 느리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 귀여워 물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아들은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훨씬 전부터 만났던 누군가에 의한 것이었던 것 같다.


 전세가 지금처럼 귀한 시절, 우리 가족은 이촌동에서 밀리고 밀려 연고 緣故도 없는 동네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서울시에 있는 광장동이라는 곳이다. 낯선 곳인데, 남편이 회사 일로 한창 바쁜 시기였기에,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처음에는 출장을 따라가기도 했다. 그런데 차라리 집 근처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낫고, 남편한테 부담을 주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 나에게 다가온 두 명의 인연이 있었는데, 모두 지방에서 온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광장동을 잘 몰랐다. 나도 다른 동네에서 왔고. 그 두 명도 그랬다.

 

 먼저 J 엄마는 울산에서 왔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만나 각자의 집을 오가며 친해졌다. 남편과는 배꼽 친구였단다. 남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더니 S 사에 입사한 후, 프러포즈해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J 엄마는 사투리를 숨기려 했는지 말이 매우 느린 서울말로 했다. 그리고 항상 꼼꼼하게 화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May도 화장해 줄게요. 눈썹 정리부터 합시다!”


라며 화장도구를 들고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J는 아들 이름이다. 우리 아들만큼 말이 느렸다. 둘은 말은 안 하지만 사이좋게 잘 지내는 순둥이였기에, 우리는 화장도 하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으며 지냈다. 그런데 한 가지 색다른 점은 J 엄마가 놀이 공원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강 건너에 있는 롯데월드를 아침 시간이 저렴하다며 한 달에 한 번씩 데려갔다. 퍼레이드에서 음악이 나오면 아들과 J는 춤을 추며 리듬을 익힌 것 같다.

 

 다음으로, Y 엄마는 부산에서 온 일본인이다. 일본어 강사를 하던 Y 엄마가 남편을 부산에서 만나 결혼했고, 남편 회사 일로 서울에 왔다고 했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Y 엄마가 실은 오사카 사람이었다니. 같은 아파트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친해졌다. Y 엄마는 지저분하다며 집에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이사 온 지 1년이나 지났는데 못 푼 이삿짐이 베란다에 가득하다고. 원래 남편도 본인도 정리를 잘 못 한다며, 털털하게 웃는다. 그런 가운데 거실 창가에 있는 엘렉톤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큰 것을 일본에서 갖고 오셨어요?”

 

 “호호! 전에 음악 교사도 했었어요. 그런데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일본어 강사가 되면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다 싶었는데 부산에서 남편을 만났죠.”

 

 “Y한테 엄마가 피아노를 가르쳐 주면 되겠네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May는 아기에게 뭐든 접하게 해 보세요. 하지만 우리 아기는 잘 모르겠어요.”


 Y 이야기가 나오자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저는 어릴 때 야마하 음악학교에 다니며, 그대로 계속 피아노를 해서 대학까지 이어질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는데, 우리 아기는 좀 다른 가 봐요.”


 “왜요?”


 “좀 예민한 아이라서요. 아이가 걱정돼, 도쿄에 있는 국립 국회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본 적이 있어요. 근데 우리 아이한테는 ‘하프’가 더 좋대요. 정서 안정이 필요해요. 유아용 하프를 사서 마음을 온화하게 해 주고 싶어요.”

 

 그렇구나. Y 엄마는 내가 본 엄마 중에 가장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Y와 우리 아이가 집 안에서 놀기보다, 날씨 좋은 날 집 뒤에 있는 '아차산'이라도 자주 가자고 한 것이다.   


 가끔 Y는 혼자만 놀려고 했기에, 차라리 두 돌 된 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숲속으로 소풍 가는 것은 엄마들이나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서울이지만 집 근처에 이렇게 공기 맑고, 멋진 숲이 있다니. 그리고 산에서 보이는 한강의 경치는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왔지만,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산책길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봄에는 꽃 냄새가, 여름에는 나뭇잎 그늘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마주한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겨울에는 벌거숭이산이 눈옷을 입고 있다. 새들이 쪼로롱 날아와, 우리 머리 위에 똥을 뿌리고 가서 모자를 쓰고 다녔다. 엄마들이 숲속을 구경하는 사이, 아기들이 유모차를 발로 톡톡 쳐도 눈치 못 채고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숲속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 보니, 근처에 있던 W 호텔에서 연주하려는지 숲에 모여 음을 맞추고 있다. 어? 그런데 그 무리 중에는 사람만큼 큰 하프를 든 금발의 여인도 있었다. 그 손에서 부드러운 하프 소리가 났기에 우리는 그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잠시 후 악기를 운반하는 무리를 따라 W 호텔로 들어가니, 로비에서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두 아기도 뭘 아는지 너무 좋아했기에, 우리는 주머니를 털털 털어 커피 한 잔씩 마시며 음악 감상을 했다.

 

 그런 만남이었건만 일상에 쫓겨 지금은 연락을 못 한 지 오래다. 그렇다고 잊은 것은 아닌데. 이런 나의 심정을 우연히 책을 읽다 발견했다.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이란 책에서,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몇 년마다 한 번씩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던져버리며 빙빙 돌아가는 원심분리기와 같다.’고.

 

 몇 년 후, 놀이 공원을 좋아했던 J 엄마네는 미국 디즈니랜드가 있는 올랜도 Orlando로 이민을 하였고, Y 엄마는 밝아진 Y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K 대학 강사로, 나는 이촌동으로 다시 이사 왔다. 이 두 명의 친구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피아노 치는 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숲속과 유원지 음악회에서 받은 기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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