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 Jun 11. 2023

음악과 웃음의 시간

사랑은 비를 타고, 진 켈리

영화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좋은 영화란 그렇게 영화를 본 뒤에 생각할 부분을 많이 남기거나, 영화 장면 자체가 큰 울림을 주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말 영화가 재미있어서 상영이 끝난 뒤에도 관객에게 웃음을 남긴다면, 그 또한 영화관을 나오면서도 관객에게 남아 있는 영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깊고 강하게 남는다면 관객은 다시 그 영화로 돌아오게 된다.


뮤지컬 영화는 그 중 관람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영화에 가깝다. 음악과 춤이라는 장르적인 요소를 반영하다 보면 일상을 그리는 데에서는 일부 멀어지는 요소가 있다. 기쁨이나 슬픔을 온몸을 다 써서 표현하거나, 갑자기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길 위에서 군무를 추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요소에서 어색함을 발견하기보다 장면들 자체를 즐겨 나간다면, 영화 속 세계에 즐겁게 빠져드는 체험을 하게 된다. <사랑은 비를 타고>(1952)는 이런 점에서 가장 완벽한, 보는 내내 관객을 유쾌하게 안내하는 영화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인물을 따라 관객을 웃음 짓게 만든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돈 락우드는 친구 코스모와 함께 무일푼으로 할리우드에 돌아와 스타의 위치까지 올라선 배우이다. 그러던 차에 유성 영화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고, 무명이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캐시와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의 첫 유성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시사회에서 최악의 혹평을 겪으며 깨는 목소리를 가진 주연 배우 리나 대신 캐시를 영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데려오려고 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 - Make'em Laugh

새로운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의 이야기는 그 소재만으로도 진행 과정을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리나와 갈등이 발생할 것이고, 캐시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겠지만, 돈과 코스모의 도움으로 행복을 찾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흘러가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 것은 그 서사보다 장면이다. 영화에 삽입된 뮤지컬 넘버들은 연출과 잘 어우러져 영화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우선 코스모와 캐시의 매력을 활용한 발랄한 장면들이 있다. "Make'em Laugh"는 슬랩스틱을 섞어가며 코스모의 유쾌함을 전하고, "Good Morning"에서는 합이 너무나 잘 맞는 돈과 코스모, 캐시의 행복을 보여준다. 별일 아닌 일에서 시작하지만, 이윽고 장면에 몰입한 관객에게 큰 웃음을 준다. 영화 속 소재와 연결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한 "Moses"도 있다. 유성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돈은 발성과 발음을 연습하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를 본 코스모와 잰말놀이를 시작하며 이윽고 함께 노래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 - Singing in the rain

반면 아예 맥락과 상관없지만 근사한 순간을 안겨주는 시퀀스도 있다. 돈의 첫 유성 영화의 시사회를 가졌는데, 애드립으로 날린 대사가 실패하고 연출이나 녹음 또한 미숙했으며, 무엇보다 다른 주연배우 리나의 목소리가 큰 웃음거리가 된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비웃음을 본 코스모는 영화를 살리기 위해 캐시의 목소리로 더빙하자는 제안을 하고, 캐시도 영화를 살리기 위해 수락한다. 혼자 길을 나서는 돈은 노란 우산을 들고 걷다가 비를 맞으며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비를 피하기보다는 음미하며 무대를 가지는 그의 모습은 뮤지컬 영화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경쾌한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의 서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넘버임에도 가장 기억에 남게 된다. 


<사랑은 비를 타고> - 첫 유성 영화 촬영

재미있는 장면을 갖춘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가 더 오래 남게 된 이유에는 물론 소재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가 개봉한 이후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차츰 넘어가는 1920년대를 그렸는데, 그로부터 20년 정도 지난 시점에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그 현장감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시대의 변화로 인해 유성 영화 시대의 스타가 몰락하거나, 새로운 시대에 맞추기 위해 도전하는 배우의 모습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미숙하게 유성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에서 목소리가 잘 담기지 않아 마이크를 어디에 숨길지 고민하거나, 고민 끝에 들고 있는 꽃다발에 숨겼는데 심장 소리에 대사가 묻히는 장면은 시대적 배경을 유쾌하게 조합해냈다. 무엇보다 <결투하는 기사>를 <춤추는 기사>로 바꾼 영화 속 상황처럼, 소리를 영화에 도입하게 된 이후 가장 활성화된 것이 뮤지컬 영화라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기도 하고, 영화 자체로도 그 역사를 이은 뮤지컬 영화의 형태로 그려진다.


<사랑은 비를 타고> - Good morning

이런 특징과 장면들은 <사랑은 비를 타고>를 뮤지컬 영화의 정점으로 만든다. 뮤지컬 영화는 뮤지컬에 비해 배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표정을 그리고, 공간 및 시간의 제약이 줄어든 것을 활용해 더 넓은 범위의 장면을 그린다. 그리고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노래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노래를 가까이에서 잡아내는 데에 유능하다. 시대를 지나 <라이온 킹>, <맘마미아>, <라라랜드> 등 다양한 형식으로 걸작에 해당하는 뮤지컬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야기가 다를 뿐 뮤지컬 영화로서 인기를 끈 요소는 <사랑은 비를 타고>나 비슷한 시대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확립한 특징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좋은 영화는 해야 하는 것을 가장 잘 갖춘 영화이다. 뮤지컬 영화의 경우에는 현란한 장면과 기억에 남는 노래, 흥미로운 소재가 그에 해당한다. 이는 <사랑은 비를 타고>에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서 그 즐거움으로 떠나는 관객에게 두 번째로 시작된다.

작가의 이전글 경계 없는 선악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