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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Jul 26. 2023

마지막 퍼즐 조각

펄프 픽션 +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완벽히 예측 가능한 이야기는 매력적이지 않은 이야기이다. 반대로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향하면 독자든 관객이든 길을 잃고 만다. 그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혼란을 주었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조화에서 감탄과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영화는 편집을 통해 사건의 순서를 자유롭게 변형하거나 동시간대에 발생하는 다른 사건을 함께 보여줄 수 있어서 다른 매체에 비해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펄프 픽션> - 미아와 빈센트의 일탈

플롯을 늘이고 줄이고 다시 이어 붙여서 오락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가이 리치 감독이 있다. 그들의 강한 색채는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초기작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저수지의 개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인 <펄프 픽션>(1994)은 더욱 독특한 내용으로 타란티노다운 이야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영화이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은 가이 리치 감독의 데뷔작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또렷한 그의 연출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두 영화는 서사를 비틀어 펼치는 재미뿐만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오락을 제공하며, 범죄 영화의 매력을 풍부하게 표현해준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두 영화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펄프 픽션>은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로 부지런히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묘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영화 전체가 시간의 흐름을 뒤틀어서 편집되어 개별적인 사건들이 연결된 잡지와 같은 구조이다. 정신 차리고 보면 앞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는 각각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끊겼던 서사와 연결되는 그 시점에 관객에게 놀라움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인물이 멀쩡히 다니는 장면이 허무하게 죽는 장면보다 한참 이후에 등장하며 주는 어이없는 즐거움도 있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 만악의 근원이 된 포커

반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이야기는 직선적으로 가되, 여러 인물의 그룹이 엉킨 실타래 같은 구조이다. 같은 시간대에 있는 인물들은 서로를 창문 너머로 엿보거나 통화를 통해 연결되며 얕은 연결이 시작되고, 이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폭발적인 전개의 복선이 된다. 등장 집단은 주인공 조니와 함께 연대 책임으로 도박 빚을 잘못 진 친구들(A), 그 빚을 지게 한 악덕 대부업자 해리와 그 부하 랜돈(B), 마약을 대규모로 제조하는 과학자와 이를 유통하는 광인(C), 마약 제조 공간에서 허점을 발견한 조니의 이웃 모임(D), 해리로부터 총을 가져오라는 의뢰를 받은 두 도둑(E)까지 크게 5개가 있으며, 각 집단 안에서도 서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물 간 관계를 요약하자면, A가 B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C로부터 D가 도둑질을 하는 것을 A가 가로채려 하고, A가 범행에 사용한 총은 E로부터 구한, 뭐 그런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연하게도 영화를 보면서도 정신없지만, 그런 유쾌한 정신없음으로 영화의 마지막까지 달린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 잠에서 깬 글로리아

복잡한 이야기 속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어디 한 구석이 부족하지만 나름의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잠시 등장하는 인물까지 모두 해당한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경우 마약에 취해 뻗어있다가 기관총을 갑자기 날리며 A, C, D 모두를 놀라게 한 글로리아나, 성깔하나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조니의 아버지, <펄프 픽션>의 경우 보스 마르셀러스와 권투 선수 부치 모두에게 가장 근본적인 위협을 준 전당포 주인 등 짧게 등장하더라도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는 인물들이 많다.

<펄프 픽션> -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빈센트와 줄스

물론 그 사이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주인공이 속한 집단이다. 그들의 묘한 멋으로 관객은 그들의 행동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펄프 픽션>의 갱단은 품위 있다. 줄스는 타겟을 죽이기 전에 왜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며, 에스겔서 구절을 읊어주고 마무리한다. 보스 마르셀러스는 모든 일에 있어서 깔끔함을 추가하고, 더욱 깔끔한 일 처리를 위한 해결사 울프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금방 적응해서 무던히 보내는 갱원들의 모습으로 영화에서 보이는 이상한 사건들을 관객도 자연스레 수용하게 된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 서로를 한심하게 보는 친구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도박 빚을 진 조니와 친구들은 묘한 의리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축구 펍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거나 싸우거나 둘 모두를 할 거 같은 인상이고, 실제로 영화에서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지만, 서로 간의 책임을 끝까지 가져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높은 빚의 해결 방법을 강도 행위로 선택하지만, 조니와 친구들의 모습은 이를 당연해 보이게 만든다. 


<펄프 픽션> - 시대를 앞선 발 마사지 논쟁

각 집단은 또한 대화와 유머를 통해 묶인다. <펄프 픽션>의 유머는 가장 강한 남성성에 고통받는 갱단 보스와 같이 상황적인 것으로도 나타나지만, 7년 동안 사람들의 항문을 거쳐서 지켜온 시계와 같이 구전되는 이야기에서의 재미도 있다. 그리고 빈센트와 줄스가 일하는 중간에 나누는 대화도 빠질 수 없다. 리듬감 있는 욕설을 뽑아내면서, 둘은 무의미하지만, 영화를 본 이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를 뱉는다. 파운드를 모르는 유럽권에서 치즈버거를 로얄 위드 치즈라고 부른다던가, 보스의 여자에게 발 마사지를 하는 사람은 정리당할 만했다던가 하는 잡담을 중요한 업무 처리 전후에 하여 잔혹한 장면 전후로 더 큰 유머를 남긴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조니와 친구들은 대화의 내용을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의견을 교류하는데, 감정이 격해지거나 서로를 욕할 때 더욱 빨라진다. 빠른 템포에 휩쓸려 어느새 대화가 끝나고 다음 사건이 벌어지는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대신 유머는 뜬금없는 상황을 통해 유발한다. 강탈한 차 트렁크에서 뜬금없이 주차 관리 요원이 나온다던가, 뜻하지 않게 이이제이를 이루는 장면들이 그렇다.


<펄프 픽션> - 초보자와 베테랑의 차이

서사와 유머와 캐릭터의 매력 속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순간의 조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시점은 관객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펄프 픽션은 워낙 복잡하게 꼬인 영화여서 두 번이나 봤음에도 어떤 것이 가장 마지막 장면인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역으로 가장 조화롭게 만들어진 명장면을 추적해본 결과, 그 부분이 영화의 엔딩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 오프닝에서, 젊은 두 커플은 식당에서 살갑게 대화하다가 갑작스럽게 총을 들어 강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에서, 줄스는 뜻밖의 기적을 보고 정말 착하게 살기로 결심했는데, 옆 테이블의 커플이 그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혼란스러웠던 이야기가, 시간 순서 상이 아닌 영화 순서 상의 마지막에서 화려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 늘 우직하게 일한 랜돈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는 건너서만 알고 있던 A, B, C, D, E 그룹이 모두 번갈아 가며 한자리에 모이면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조니의 집에서, 다시 해리의 저택에서 시간 차이를 두고 도착한 그룹들은 번갈아 사고를 치고, 아이러니가 반복되어 가장 가능성 없었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결과로 향하게 된다. 가장 돈을 바라지 않았던 사람에게 돈이 가고, 가장 돈을 바라던 이는 허망하게 이를 놓치는 모습은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 끝까지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며 열린 결말로 웃음을 준다.


두 영화는 모두 한 번 봐서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완전히 이해하려면 다시 한번 봐야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 작품들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식의 지적인 복잡함이 아닌 서사, 인물 등 영화 분위기 자체가 혼란 속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영화를 거듭 돌아보게 만드는 감독들의 각기 다른 최고작이자, 그 시간 내에서 가장 깊게 영화에 빠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다.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질 때의 짜릿함을 다시 경험해보기 위해서라도, 이런 퍼즐 같은 영화를 더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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