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행동을 목격할 때, 쉽게 그 행동을 한 사람을 탓하게 된다. 그 사람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그 사람에 따라 결과도 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잘못은 그 사람 한 명에만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 안에서 유사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것은 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개인을 탓하는 대신, 그들이 사는 시대나 사회 구조에서 결함을 찾을 필요가 있다.
<모던 타임즈> - 찰리 채플린의 대표적인 캐릭터, The Trump
찰리 채플린은 결함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웃음을 주는 코미디 영화의 역사이다. 어수룩하게 넘어지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며, 끊임없이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는 늘 그 사람이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 또한 담고 있다. 찰리 채플린이 살아가던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그 웃음 뒤에 있는 풍자의 어두움까지 짙어졌다. 산업화로 인해 도구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다룬 <모던 타임즈>(1936)를 시작으로, 살아 있는 독재자를 노골적으로 공격한 <위대한 독재자>(1940), 마침내 살인까지 풍자의 대상으로 넣은 <살인광 시대>(1947)까지, 갈수록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그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모던 타임즈> - 늘 지켜보는 공장장
무성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은 특히 과장된 몸짓과 표정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데에 능숙했다. 그 무성 영화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모던 타임즈>에서도 특유의 코미디 연기가 드러나며, 이는 강렬한 사회 비판과 결합되어 있다. 떠돌이(The trump)는 빠듯한 생산 일정을 가진 공장에서 부품처럼 굴려진다. 화장실에서 잠시 쉬는 시간 또한 고용주의 시선 아래에 있으며, 음식을 먹는 시간도 아까워 자동으로 음식을 먹게 하는 기계의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휴식조차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시위에 휘말리고, 이후 사회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기 다른 곳에 있는 가난을 보여준다.
<모던 타임즈> -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어 돌아가는 떠돌이
시위에 휘말렸던 주인공은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후 다시 우연을 통해 사면된다. 하지만 오히려 감옥에 더 남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이후에도 기회만 되면 감옥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사회는 살기 쉽지 않다. 조선소 직원, 백화점 야간 경비원, 오랜만에 열린 공장 직원까지 여러 일을 하지만 매번 실수를 저질러 해고당하고, 그 와중에 옛 공장의 직장 동료를 강도와 경비원의 사이로 만나거나 파업으로 공장이 멈추는 등 암울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마침내 그에게 무대가 주어진 순간 처음으로찰리 채플린의 목소리가 등장하여 영화 안팎의 관객에게 강렬한 웃음을 전하지만, 무대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그래도 영화는 함께 웃으며 걷는 연인의 모습을 가지고 조금은 희망차게 마무리된다.
<위대한 독재자> - 세계정복 야옥을 유아처럼 보여주는 힌켈
그러나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세상은 최악의 상태로 향한다. 찰리 채플린은 그 시대를 비판하기 위해,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떠벌이를 작품에서 제외하며 조금은 진지한 모습으로 비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인 히틀러를 조롱한다. <위대한 독재자>는 히틀러에 해당하는 광기 어린 독재자 힌켈과 나치에 해당하는 쌍십자당이 등장한다. 힌켈은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독재자로서 군사적인 야욕을 내세우고국민을 억압하지만, 어리석은 행동과 당연한 사실을 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한심하게 그려진다. 특히 이웃 나라 독재자와의 회담에서 이 점이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반면 찰리 채플린이 힌켈과 1인 2역으로 연기한 유대인 이발사는 무지함 속에서 여러 차례 사람을 구해내는 모습으로 희망을 보여준다.
<위대한 독재자> - 죄송합니다만, 전 황제가 되고 싶지 않군요
영화는 유대인이 차별받고 얻어맞는 사회 모습이나 무력을 과시하는 진군 모습을 보여주며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놓치지 않지만, 동시에 무지하지만 저항하며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이발사의 모습으로 여전히 희망을 전한다.이발사는 쌍십자당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고, 힌켈은 오스트리아 침공을 지시하다가 한순간에 우스꽝스럽게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뀐다. 그 이후 이발사가 힌켈의 유대인 차별과 폭력의 메시지 대신에 전하는 평등의 메시지는 이발사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부족했던 모습을 통해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살인광 시대> - 소득을 확인하는 베르두 씨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특히 노동자층이 그랬다. <살인광 시대>의 주인공 베르두 씨는 은행에서 30년 동안 일했으나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아들과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사기꾼이자 연쇄살인마가 된다. 마침내 살인까지 풍자의 대상으로 편입된 것이다. 주인공의 변화와 살인마로서의 행동은 사회적인 어리석음과 비인도적인 면모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상류층 여성들은 무지함 속에 그의 거짓 고백에 쉽게 넘어가고, 그들을 죽여서 주식시장에 바친 돈은 매 순간 증발하여 더 많은 돈과 살해를 부른다.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과 달리 베르두 씨는 해고 한 건 외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는 그 순간 능동적으로 판단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선택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살인광 시대> - 실수인 척 올가미를 조이는 베르두 씨
그 과정에서 찰리 채플린이 베르두 씨에 입힌 어리숙함은 재미와 함께 섬뜩한 느낌을 남긴다. 영화에서 간접적으로만 나타난 두 건의 살인은 그가 전문적으로 쉽게 처리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음으로 묘사된 그의 작업 과정도 약물을 성공적으로 배합한 뒤에 깔끔하게 성공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가장 다급하게 죽여야 하는 인물을 마주하자 그는 섞어놓은 독약을 잃어버리거나 흔들리는 배 위에서 눈치만 보다 연이어 실패하는 등 허술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인다. 사기꾼이기에 가장 성공적이어야 하는 거짓말 또한 영화 내내 구멍이 훤히 보이면서 이뤄진다. 웃음을 유발하는 와중에도, 이는 그가 이전에 얼마나 평범한 인물이었는지 보여준다. 불황이 평범한 삶에 영향을 미칠 때 극단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베르두 씨를 통해 확실히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 또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중 가장 어두운 결말을 제시하여 그 비극성을 더한다.
세 영화에서 우스꽝스럽게 다뤄진 모습에서, 시스템 속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점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동시에 개인의 일탈이나 잘못으로 처리된 사건들도 떠올랐다. 사실 거의 모든 사건은 충분히 반복되기 전까지는 개인의 잘못으로 처리되곤 한다. 그런 사건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습거나 참혹한 사건들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보다는 관심 있는 시각으로 봐야 할 필요성을 80년 넘게 묵은 영화들로부터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