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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Aug 11. 2023

커튼콜을 위한 선택

버드맨 혹은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

연달아 일이 안 풀리는 시기가 있다.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지만 정답이 아니고, 용기 내 도전한 것은 쉽게 실패나 불합격이라는 성적표를 얻는다. 그럴 때마다 그 길이 나의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시작은 했으니 최소한의 성과는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실패 자체에서 끝나기보다는 박수 한 번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 듯하다. 이는 넓게 보면 인생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인데, 약간 꼬이는 구간이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 박수받는 순간에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 혹은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2014)은 나보다 고점도 더 높고 저점도 더 낮은 인생에서의 마지막 도전을 그린 영화이다. 마치 희망찬 내용의 영화인 것처럼 보이는 표현이지만, 영화는 인물의 성공보다 실패가 핵심 내용인 영화이다. 그리고 꼬일 대로 꼬인 인생에서 그 실패를 벗어나려 하는 사투 중인 주인공을 한없이 조롱하며 더 강한 재미를 만든다.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는 순간을 갈구하는 주인공은 오히려 그 마음에 사로잡혀 길을 헤매게 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버드맨> - 버드맨과 함께 있는 대기실

리건 톰슨은 모든 것을 걸고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젊은 시절 맡았던 버드맨이라는 캐릭터는 그에게 명성과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그 캐릭터에 갇혀 배우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방황만 거듭하게 했다. 잊혀가는 스타였던 그는 이제 레이먼드 카버의 연극을 브로드웨이로 가져와 대중, 평론가,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노린다.

<버드맨> - 리건을 쫓는 버드맨

리건의 뜻대로 되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다. 연기를 못하던 배우 대신 데려온 마이크는 리건이 하는 것은 진짜 연극이 아니라며 끊임없이 돌발행동을 한다. 무대에서 진짜 술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에서 연기를 하거나, 갑자기 준비되어 무대에서 성행위를 시도하기도 한다. 리건이 무엇보다도 원하던, 연극을 통해 그에게 주어지는 관심을 쉽게 빼앗기도 한다. 리건의 딸 샘은 아버지의 관심이 부족한 채로 성장해서 마약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계속 눈에 걸리는 마이크와 연인이 되어버린다. 초연 전날 술자리에서 만난 저명한 연극 평론가는 그의 연극에 혹평을 선사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무엇보다도, 그를 성공의 자리에 올렸던 버드맨의 환상은 계속 그의 옆에 남아 그를 조롱하고 방해한다. 다시 사랑받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은 그를 더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며 궁지로 내몬다.


<버드맨> - 이 연극이... 뭐랄까 마치 내가 살아온 기형적인 삶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야

하지만 이미 출발했기에 리건은 멈추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멈출 수 없다. 영화 전체가 롱테이크를 기반으로 하나로 이어지도록 연출되어 있는데, 특히 첫 리허설부터 연극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단 한 번도 끊기지 않는다. 초연이 끝날 때까지 그는 계속 목표를 향해 걸을 뿐이다. 카메라가 리건을 가운데에 맞춘 만큼, 그가 가진 불안함과 초조함은 주로 소리로 전달된다. 배경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주는 리듬으로 반복되는 드럼 소리와 거리에서 노숙자가 읊는 맥베스의 독백이 그렇다. 내일의 시간을 향해 더딘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그의 모습이다.

<버드맨> - 타임 스퀘어에서의 활보

처음으로 리건과 리건의 연극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도, 결국 그 걸음이 이어진 결과이다. 마지막 프리뷰 공연 중 리건은 잠시 바람을 쐬러 뒷문으로 나왔다가 옷을 잃는다. 잠시 멈칫하던 그는 자신의 등장 시점에 맞게 무대 위에 서기 위해서 그대로 시내를 걷기 시작한다. 시야 밖으로 옮겨놓았던 비웃음과 조롱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뉴욕 시내 한가운데를 활보한다. 공연은 조금 혼란스럽게 마무리되었지만, 그가 팬티 차림으로 돌아다닌 모습이 화제가 되어 공연에, 그리고 그에게 다시 대중의 관심을 끈다.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그는 사랑받을 본격적인 기회를 얻는다.


<버드맨>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존재하지 않아

그렇게 찾아온 초연은 리건이 스스로 말하듯 마침내 무언가를 제대로 해볼 기회였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투닥거리던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그 마무리로, 그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포장하던 모습을 넘어 자신을 온전히 보여준다. 소외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아내를 빼앗긴 연극 속 캐릭터처럼,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대사에 담아 전달한다. 마이크의 말처럼 진짜 연기를 하던 그는 소품이 아닌 실탄이 들어있는 총으로 머리를 쏜다. 그리고 진실된 연기를 본 관객의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버드맨> - 버드맨으로 돌아온 리건

아이러니하게도 리건은 머리를 쐈지만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모습은 결국 버드맨과 닮아있다. 버드맨을 벗어나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대중의 사랑을 찾기 위해 걸은 모든 여정이었지만, 그 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래도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에 대한 호평이 담긴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병원 밖에는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대중들이 있으며, 샘은 그를 위해 꽃다발도 선물한다. 무대 위의 연기로 가장 높은 순간을 만들어 삶을 마치려던 그의 의지는, 약간 틀어지면서 오히려 더 높은 순간을 만든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모두에게 사랑받는 순간을 다시 찾아온다. 주위를 둘러본 이후 주저 없이, 온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삶을 마저 마친다. 고생 끝에 찾아온 행복의 순간을 영원히 고정하기로 한 것이다. 리건은 창문 밖으로 향하고, 뒤늦게 그를 찾은 샘은 자유를 찾은 아버지를 보며 떨어진 바닥이 아닌 날아오른 위를 바라본다.


<버드맨> - 아버지가 찾은 자유를 바라보는 샘

리건의 모든 꿈은 사실 다른 배우가 그의 연기를 보고 칭찬하며 해준 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사인은 휴지 조각 위에 쓰인, 취한 채로 그린 그림이다. 허상으로부터 시작한 꿈이기에 그는 허상만 찾았고, 오랜 방황을 겪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겪을 때도 자신 죽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같은 비행기에 탄 조지 클루니만 헤드라인에 오를 거부터 걱정하는 포장에 집중한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던 마지막 모습을 두 차례나 반복해서 선택하였고, 그 마무리 이전에 자신의 포장을 벗김으로써 온전한 자유를 찾으며 박수받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이 완벽한 마무리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기 전 먼저 그 만남을 마치며 마지막 박수를 받는 커튼콜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아직은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걸어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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