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 Jun 02. 2023

경계 없는 선악에서

세르조 레오네의 달러 3부작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무법자들이 들끓는 마을에서 범죄자를 처단한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거나 누군가를 구해주는 것이 아닌, 그 무법자가 가진 현상금을 목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조금은 비열한 방법을 섞어서 쉽게 타겟을 모두 소탕한 뒤, 다시 다른 마을로 떠난다. 가장 재미있는 스파게티 웨스턴 작품인,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세 편에서 공통으로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무법자와 도적들이 많고, 이를 잡는 보안관이나 현상금 사냥꾼도 존재했다. 이 시대를 다룬 서부극 역시 최초에는 단순한 선악 구조를 기반으로 보안관이나 현상금 사냥꾼이 악을 처단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패하는 일이 흔한 보안관이나 사적 이득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현상금 사냥꾼 마냥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점을 고려하여 비열한 사람들의 암투를 다룬 새로운 서부극을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제작되지도, 많은 예산을 들이지도 않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장르는 기존 서부극을 넘어 더 오랜 시간 동안 칭송받는 장르가 되었다. 그중 세르조 레오네 감독이 만든 달러 3부작은 장르를 완성한 영화들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과 서사로 시대를 넘어 재미를 전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황야의 무법자> - 수배범 찾으러 가는 길

마을을 찾은 주인공은 이야기끝까지 이름이 제시되지 않는다. 조, 만코, 블론디 등으로 불리긴 하지만 이는 모두 익명화된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는 방법으로 캐릭터에 멋을 더하기도 하지만, 캐릭터를 하나로 정해두지 않는다는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선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맞게 행동한다. <황야의 무법자>에서는 마을을 장악한 두 무법자 패거리, 박스터 가문과 로호 가문 모두를 소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두 가문 사이를 오가며 돈을 주는 대로 행동한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 좋은 놈으로 소개되지만, 범죄를 끊임없이 저지르는 이상한 놈 투코를 체포해서 현상금을 얻고 교수형이 진행될 때 풀어주는 것을 반복하는, 선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인다. 최고 수익만을 추구하며 움직이는 모습은 주인공이 포함된 것을 비롯해 영화의 갈등 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보게 만든다.


<석양의 무법자> - 협업 진행 중

이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황야의 무법자>에서는 납치라는 명확한 범죄를 저지른 라몬이 존재하지만, 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를 표절해서 적용한 결과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제외한 다른 두 편의 악역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석양의 무법자>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모두 같은 보물을 쫓고 있다. 나쁜 놈은 자신의 의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인물이고, 이상한 놈은 과거 범죄 전력이 많아 높은 현상금이 매겨진 인물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좋은 놈이라고 이들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보물을 찾는 과정에 있어서는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바로 죽이는 등 더 잔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석양의 건맨> - 시계의 첫 등장

<석양의 건맨>에는 메인 악역으로 인디오와 그를 추적하는 모티머 대령이 등장한다. 인디오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으려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다 그 남자를 살해한 뒤 그녀와 관계를 맺고, 그러던 중에 여인이 자살한다. 그녀의 오빠인 모티머 대령은 이후 현상금 사냥꾼을 시작해서 인디오를 쫓는다. 발생한 사건 자체만 바라보면 인디오가 악이지만, 영화 내내 인디오는 모티머만큼이나 그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대한 의문은 영화 속 묘사를 고려했을 때 그녀를 인디오의 애인으로 보면 해결된다. 바람피우는 애인의 모습을 본 인디오가 충동적으로 그 밀회의 대상을 살해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사랑하는 사람까지 죽어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모티머 대령만큼이나 인디오도 그녀의 사진이 담긴 시계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여러 사건을 겪은 뒤, 주인공은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건맨>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발각되어 감금당하고 고문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황야의 무법자>에서는 거의 시체 꼴 탈출하여 복수를 위한 수련을 시작하고, <석양의 건맨>에서는 험한 꼴을 실컷 당한 이후에 인디오의 계략에 활용되며 풀려난다. 이는 이후 나타날 호쾌한 복수의 예고이자 마지막 결전으로 향하는 발판이 된다. <석양의 무법자>는 세 사람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구도인 만큼 양상이 조금 다르다. 서로 감금하거나 구속하고 도망가는 과정이 반복되며, 결국은 보물 앞에서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황야의 무법자> - 대결을 위해 찾아온 주인공

그리고 찾아오는 것이 1대1 대결이다. 최근 <존윅 4>에서 멋지게 오마주했듯, 정해진 거리에서 먼저 장전해서 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미 수를 써놓아서 승부를 정해놓고 대결을 시작한다. 이는 <인디아나 존스>에서 칼을 휘두르는 악당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장면이나, <스타워즈>에서 악당이 눈치채기 전에 먼저 쏘는 것처럼 순수한 선이 아닌 인물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석양의 무법자> - 나쁜 놈의 마무리

<황야의 무법자>에서는 상대의 특성을 이용한다. 이전에 악당 라몬과 같이 지낼 때, 그가 늘 상대방의 심장을 정확히 노린다고 자랑하듯 말한 점을 기억해놓은 주인공은 이를 대비해 가슴 부분에 철판을 두르고 대결에 임한다. 심장을 똑바로 노리라고 상대를 도발하기도 하며, 너무나 쉽게 라몬을 죽인 뒤 다시 홀연히 마을을 떠난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세 사람이 서로에게 총을 겨두는 1:1:1 대결을 한다. 대결을 제시한 주인공은 처음부터 한 사람만 노리고 있었다. 이상한 놈에게 장전되지 않은 총을 쥐여준 그는 마음 놓고 나쁜 놈을 사격하여 승리한다.

<석양의 건맨> - 세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는 시계

<석양의 건맨>에서는 모티머 대령과 인디오가 가지는 대결이 중심이다. 다른 사람보다 멀리 쏠 수 있는 총을 가진 모티머 대령은 대부분의 대결에서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침착하게 상대를 죽인다. 인디오는 빠르게 사격을 준비해서 사격하는 데에 능한 인물이다. 상대를 죽이기 전, 늘 상대에게 총을 준 뒤 늘 가지고 다니던 시계에서 음악이 나오는 시간 안에 상대를 죽인다. 둘의 대결은 시계에서 음악이 나오는 상황모티머 대령에게 조금은 유리한 거리에서 일어나며, 당연하게도 모티머 대령의 승리로 마무리되어 복수를 완성한다.


세 편의 이야기는 명확하지 않은 선악 구조 속에서 주인공이 끊임없이 손익을 저울질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과 더욱 가까운 모습 때문인지, 관객에게 더 많은 지지를 얻으며 아직도 비슷한 인물과 서사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다. 잘 만들어진 인물과 서사 구조에 감탄하며, 현실성을 갖추고 있어 시대를 넘어 전달되는 재미를 간직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꿈꾸고 노래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