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끄 드미의 낭만 3부작
영화를 보는 시간은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꾸는 시간으로 볼 수 있다. 두 시간 전후의 시간 동안 현실에서 온전히 벗어나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자연이든, 사회든, 사랑이든 현실에 메이지 않고 이상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만든다. 특히 꿈을 꾸려고 하면 하염없이 깊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관객은 영화가 주는 꿈에 더 깊게 빠져들게 된다.
누벨바그 시대의 자끄 드미 감독은 화려한 색감으로 구성된 화면 속에 사랑 이야기를 잘 담아내는 감독이다. 특히 <롤라>(1961), <쉘부르의 우산>(1964),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 세 편의 영화에는 하염없이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는 캐릭터들 중심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낭만적인 데에 빠질 수 없는 음악 또한 주요하게 사용되어 인물들이 꿈꾸던 결말이 이뤄졌을 때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사랑은 늘 아름답게 시작한다. 세 영화에는 모두 시작하는 연인들의 행복한 순간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랑은 동시에 양방향으로 이뤄지기 어렵고, 이뤄지더라도 현실의 여러 장벽이나 알지 못했던 서로의 다른 마음으로 인해 좌절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 영화는 낭트, 쉘부르, 로슈포르 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그 모든 과정이 가진 낭만을 보여준다.
<롤라>는 그중에서도 이뤄지기 어려운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낭트에 사는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첫사랑이자 짝사랑을 한다. 댄서 롤라는 자신을 임신시키고 떠난 어떤 젊은 선원을, 롤랑은 어린 시절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한 롤라를 사랑하고 있다. 롤라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듯한 꼬마 셰실은 미군 프랭키를 사랑하고, 미군 프랭키는 약혼녀를 미국에 두고 있지만 롤라를 사랑한다. 방향이 서로 꼬여 있는 미숙한 마음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고, 사랑은 쉽사리 쌍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마침내 낭만적으로 사랑을 이루는 연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와 함께 낭트를 떠나 쉘부르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이 향한 쉘부르도 사랑이 늘 온전히 이뤄지는 곳은 아니다. <쉘부르의 우산>에서 쉘부르의 자동차 수리공 기와 우산 가게 딸 주느비에브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한다. 항상 붙어있던 둘은 기의 입대로 멀어지고 만다. 떠나기 전 함께 보낸 밤으로 인해 주느비에브는 아이를 가지게 되고, 이후 기의 기나긴 군 생활 기간 사이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남자를 보자 그 남자의 진실한 마음과 아이를 키우기 위한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두 영화는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사랑을 위한 선택과 그렇지 않은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을 집중하여 보여준다.
반면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사랑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순간에 집중한 영화이다. 사랑의 시작은 삶을 빛내줄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가 시작되기도 하고, 늘 상상했던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나 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롤라>나 <쉘부르의 우산>처럼 그리움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마음을 보여줘야 하기에, 이를 가장 낭만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인 노래를 주로 사용한다. 사랑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사랑을 기다리는 자신의 상황을 노래하고, 사랑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가사에 가득히 담는다. 그리고 사랑이 끝났거나 멈춰진 뒤에는 그리움을 담아 노래한다.
<롤라>는 세 편 중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인물들이 부르는 노래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유일한 노래는 롤라가 카바레에서 댄서로서 자신을 소개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남편 없이 아이와 함께 둘이 남은 롤라가 작은 가정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지속한 방식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유혹해야 하는 업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온전히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늘 자신을 두고 떠난 선원만을 그리워했기에, 롤랑과 프랭키의 사랑은 외로움을 달래거나 필요한 것을 얻는 선에서 끝난다. 그들은 결코 롤라의 마음속으로, 그녀가 부르는 노래 가사로 들어갈 수 없었다.
<쉘부르의 우산>에서는 영화 전체적으로 같은 선율이 반복된다. 특히 기와 주느비에브가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 같은 선율을 사용한다. 둘은 함께 만나 데이트할 때에도, 서로 멀어지게 된 상황에서도, 멀어지게 된 이후 그리워할 때도 같은 노래를 반복한다. 다만 가사는 이름만을 부르는 것에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가득 담기게 된다. 마침내 그리움의 표현이 사랑의 표현을 압도했을 때, 주느비에브는 자신에게 반복해서 찾아오며 아이까지도 자신의 아이로 키우겠다는 롤랑의 마음을 받아주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과 결혼에 이르게 될 때도, 이를 기가 알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같은 선율을 반복해서 잊지 못하는 일종의 미련을 보여준다.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다양한 넘버가 등장하는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같은 선율을 노래할 때, 두 남녀는 반드시 연결된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그냥 같은 멜로디를 부르기도 하고, 악보를 잃어버리고 이를 우연히 발견하는 운명이 조금 더 섞인 방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마침내 함께 듀엣곡을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사랑의 완결을 이룬다. 다른 영화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랫동안 멀어졌다 재회하는 커플의 경우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한 원인인 남자의 우스운 이름을 주제로 한 노래를 따로 불렀기에, 다시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누구보다 먼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노래하던 재회의 결과는 그들이 노래를 부른 방식과 그 상황에 따라 다르다. 롤라의 기다림은 응답받아서, 그녀가 기다렸던 선원은 정말 성공해서 그녀에게 돌아온다. 다른 사랑의 실패자들과 마찬가지로 낭트를 떠나려고 했던 롤라는 돌아온 선원 미셸과 아마도 거의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로슈포르의 재회는 다른 연인들이 많아 중심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렵게 가진 재회를 이어갈 것이다.
반면 쉘부르의 우산에서 두 사람이 꿈꾸고 노래했던 재회의 날은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주느비에브는 우연히 기가 창업한 주유소에 찾아온다. 서로를 알아본 뒤, 주느비에브는 그에게 차에 있는 아이가 그의 아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기에게 아이의 모습을 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지만, 기는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다. 서로가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한 뒤, 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 이전까지 둘이 부른 노래 속에는 전하지 못한 미련이 남아 있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 남는다.
세 영화에서 자끄 드미가 그린 낭만은 행복한 결말에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사랑이 시작하는 아름다운 순간부터, 서로 간의 관계를 인정하고 멀어지는 모습에서도 낭만을 찾았다. 그리고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홀로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의 마음처럼 오랜 시간 변하지 않은 사랑 자체에서 낭만을 보고 이에 집중하여 그려내었다. 영화 속에 그가 담은 낭만이 허구로만 남아있지 않도록, 연인에게 가족에게 가져야 할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