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게 된 이유
"으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앙"
방에서 집이 떠나가라 우는 소리가 난다. 2살, 5살, 8살 세 딸 중에 하나인데, 일단 막내 꼬맹이의 앙칼진 소리는 아니다. 첫째는 이제 좀 컸다고 저렇게까지 우는 일이 없다. 목청 좋은 둘째임에 틀림없다. 첫째와 셋째 사이에 낀 둘째는 늘 억울한 일이 많으니까.
방으로 다가갈수록 그 서러운 울음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둘째의 소리도 아니다. 첫째 빛이다! 빛이가 이만큼 울 정도면 어딘가 크게 다친 거다. 방으로 달렸다.
"빛이야, 괜찮아? 어디 다쳤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빛이는 나를 보자마자 더 서럽게, 더 크고 높은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진짜 크게 다쳤다. 다만 다친 대상이 빛이는 아니었다.
"이거 별이가!!!!"
빛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빛이가 가리킨 막내 별이를 보니 손에 작은 인형을 쥐고 있다. 얼마 전 빛이 친구가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사다 준 아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좋은 향까지 나는 아주 귀여운 토끼인형이다.
빛이의 사랑을 듬뿍 받던 이 작고 깜찍한 토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의 손에서 끔찍함으로 변해버렸다. 귀가 없다. 그 귀엽던 토끼가 진짜로 귀 없다. 지극히 이성적인 나조차도 그 귀 없는 토끼를 보니 손이 다 떨린다. 상황을 수습할 자신이 없다.
"어.. 빛이야..? 이거.. 아빠가.. 어떻게.. 잘 붙여.. 볼까?"
"아아아아아아아아!!!!!"
성질만 돋웠다. 사실 나도 말은 저렇게 꺼냈지만 누가 봐도 원상 복구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일단 토끼를 들고 나와 접착제로 조심스레 붙여 본다. 본드가 마르는 동안 빛이의 마음도 조금은 진정된 것 같다. 난 토끼 귀를 붙일 때보다 더 조심스레, 하지만 불안한 모습을 들키지 않게, 당당함과 뻔뻔함을 장착하고 빛이를 부른다.
"짜잔! 빛이야, 아빠가 토끼 귀 붙였어!"
"티 나잖아!"
1초 만에 퇴짜다. 나름 잘 붙인다고 붙였지만 역시나 접합부의 갈라진 모습을 완벽히 감출 순 없다. 그리고 빛이도 그 부분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게다가 모양보다 더 문제는 촉감이었다.
"아빠, 이거 귀가 왜 이렇게 딱딱해?"
원래의 그 말랑말랑 기분 좋은 촉감은 사라지고, 토끼 귀가 머금었던 본드는, 딸의 눈을 속이다 걸린 내 마음처럼 단단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빛이가 실망감에 돌아선 사이, 어느새 토끼는 다시 별이 손에 들어가 있었다. 상황은 처참했다. 이번엔 목이 없다. 바닥에 내가 서 있을 몫도 없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 허탈하면 웃음이 난다 했던가.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상황을 지켜보던 빛이마저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웃는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그때, 어디선가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학하면 빛이랑 일본이라도 갔다 올래?"
그렇게 아내의 말 한마디에 아이와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