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팔순 넘은 노모들은 남북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어른들이라 음식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신다. 그 마음 알기에 주지 말라는 말 대신 알았다며 찾으러 간다.
이렇게 불친절할 수가! 전자기기 사용은 팔순을 훌쩍 넘긴 노모에겐 다빈치코드를 푸는 것보다 어렵다. 설날 아침, 새로운 지인 번호 저장을 시작하셨다. 10분이 지났는데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시길래 유심히 봤다. 첫 번째 난관은 연락처의 저장 위치를 묻는 질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상단의 확인창을 열고 [핸드폰 저장 / SIM1 저장]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노인들에게 해독이 안 되는 질문이다.
'당연히 저장하지! 왜 물어? SIM1 이건 머여?'
불필요한 질문이다!
전화번호가 등록이 되었나 확인까지 하신다. 저장이 안 됐다며 무한 반복하는 중이다. 10분이 넘었다. 할머니의 모습을 알아챈 손녀는 할머니 귀엽다며 웃는다. 노모의 딸도 그런 엄마가 귀여워 뒤로 넘어가며 웃는다.
반복은 뇌를 무료하게 한다. 두 번째 난관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집중력 저하와 졸음, 자꾸 이상한 페이지로 이동한다면 중얼거리신다. 자세히 지켜보니 졸고 계신다.
검지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려고 하면 검지보다 조금 긴 중지 손가락이 먼저 터치를 한다. 다른 페이지로 이동해 버린다. 노모는 당신이 졸고 있다는 인지도 못하신다. 연락처 저장 완수는 요원하다. 메모를 들여다보니 총 4개의 연락처가 있다. 아직 1개도 등록 못했다. 스스로 오늘 안에 마무리할 수 없는 연락처 저장 미션이다. IT 세상, 노모에겐 너무나 불편한, 배려 없는, 못된 세상이다.
졸음이 조금 가셨는지 갑자기 택시 기사의 칭찬을 자랑하신다. 연락처 저장은 아직도 못했다. 택시 기사가 노모를 그냥 지나치려 했다고 한다. 손으로 불러서 탑승하니 기사가 칭찬을 하셨다고.
‘할머니, 직접 카카오 부르셨어요? 대단하신데요!’
택시 불러서 이동하신 지는 오래됐다. 카톡 메시지로 건강정보, 명언, 신통방통한 중국 서커스 동영상도 보내 주신다. 나름 노모는 자부심이 있으시다. 다른 노인들보다 당신은 신문물을 활용하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연락처 저장이 안 돼도 답답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신세대 노인’이라는 정체성에 흠집이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연락처는 일부러 나서서 저장을 해드리지 않았다. 막히는 이유를 설명만 했다.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기도 하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시는 보람을 뺏으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 뇌를 쓴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뇌를 활성화한다. 일반인이 5초 걸리는 일을 10분 넘게 시간을 쓰는 것은 무료한 노모의 하루를 채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성공했을 때 느낄 보람도 큰 행복이다. 성공하면 지인들에게 자랑할 소재가 된다. 으스댈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과 동일하다. 서툴더라도 응원하는 것이 훨씬 노모에게 좋은 방법이다.
‘시엄니’ 전화는 귀찮았다. 솔직한 감정이다. 그러나 연락처 저장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맞닥뜨려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보였다. 얼마나 어려운 고난도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지 현장에서 보았다. 아무 때나 전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다 하다 실패하면 전화로 요청하는 거였다.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신세대 노모’ 그녀에게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