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을 위해 언제나 참고 기다려주고 응원을 주는 사람일까? 이성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부모도 자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다. 감정을 품고 사는 동일한 생명체다.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면 이성은 쉽게 제압되어 버린다. 자취를 감춘다. 이성적 사고를 밀어내고 증폭된 감정은 상처를 남기고 사그라든다. 바로 이성이 내미는 카드, ‘내가 참았어야 했어’
아래 이야기는 내 지인에게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33살 여성 B 씨, 직장에서 폭행을 했다. 피해자가 없는 점심시간을 틈타 집기를 파손하고, 개인용품을 만져서 손해를 입혔다. 공포스러운 상황을 자리에 있던 몇몇 동료들은 지켜보았다. 사건 현장의 옆방에서는 중요한 고객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다. 겨우 2미터 거리다. 병적 발작처럼 보이는 거친 행동에 동료들은 일시정지된 상태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소리라도 지르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B 씨 어머니는 회사에 불려 와 피해자와 회사에 사과를 했다. 피해자에게는 소정의 합의금에도 동의했다. B 씨는 퇴사하는 날 어머니와 함께 예약된 병원으로 이동했다.
자식은 기쁨이다. 그 기쁨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데는 수많은 아픔, 원망 그리고 미움도 감내해야 한다. 합의금에 대한 내용을 딸, B씨도 알아버렸다. 일부러 알리려 한 것은 아니었을 게다. 생돈을 날린 것에 대한 화남, 이런 일을 만든 딸에 대한 원망이 올라오면서 쏟아내 버렸을 것이다. 감정이 이성을 덮친 거다.
딸이 알게 되면 흥분할 것이고, 온전치 않은 딸아이가 다시 어떤 사고를 칠지 안심할 수 없으며, 결국 안정적 치료에 방해가 될 것이다. 폭행 혐의 한 줄 이력보다 합의금 처리는 백번 옳다. 딸의 치료를 위해 합의금에 대한 내용은 함구해야 한다.
이것이 이성적 논리다. 그러나 휘몰아쳐 올라온 감정에 이성은 굴복했고 일은 더 복잡해졌다. 딸은 근무했던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격앙된 어조의 협박 문자를 보냈고, 그 문자는 다시 어머님께 전해졌다. B 씨의 거친 감정이 담긴 40개의 메시지였다.
인간은 감정을 별거 아닌 것으로 쉽게 간과한다. 감정이야말로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 강자다. 모든 이성적 판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감정이다. 조금 더 나은 성숙한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삶의 질을 높여간다. 전문 지식을 쌓는 데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 지혜를 습득하기 위해서도 각고의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관계도 정성 들이지 않고 신뢰가 높아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감정 때문에.
감정 관리는 어렵다. 그래서 누구나 감정 조절에 실패하기 쉽다. 감정은 순식간에 뿌연 연기처럼 온몸을 채운 후 팽창한다. 밀도가 높아진 감정은 분출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만나 터져버린다. 논리적 이성이 완전 맥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B 씨 어머니는 자식의 일임에도 이성의 밧줄을 끝까지 부여잡지 못하고 화라는 감정이 그녀를 채우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합의금 사실을 쏟아내 버렸다. 감정이 잦아들고 이성이 다가와 전해준 한마디는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후회다. 언제나 그렇다. 누구나 내 안에 나와 공존하는 감정은 관리가 참 어렵다.
자식이라도 밉다. 33살의 자식 회사에 불려 가 사과를 해야 하고, 딸이 저지른 폭행 현장 사진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잘 키워보겠다며 유학도 보내 키웠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다. 저가 상품 선택지를 찾아 아등바등 살았던 세월이 왜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정신치료까지 돌봐야 하다니 어찌 올라오는 감정이 가볍겠는가. 아무리 자식인들 밉지 않을 수 있을까. 밉다. 자식이라도 밉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감정이라는 녀석의 존재에 대해서. B 씨는 감정조절에 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행동 양상을 벗어났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어머님의 정도는 정상범주다. 지혜나 지식을 채운 가치보다 더 값진 가치가 감정관리력이지 않을까? 감정 관리력, 보이지 않고 인지하기 어려워서 눈치채기 어렵다. 높은 감정관리력은 삶의 긍정적 시너지를 선물한다.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고, 신뢰를 높여 성공적인 삶으로 리드한다. 낮은 감정관리는? 아마 ‘망나니’ 타이틀이 던져지지 않을까? 물론 망나니를 넘어서면 치료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