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강원 Jan 02. 2024

2023년 클래식 공연 연말 결산

공연장을 찾은 횟수 136회. 대부분 클래식 음악, 오페라, 발레 공연이 주를 이었다.

다른 이들의 관점에서는 입이 떡하니 벌어질 횟수이긴 하겠지만 콘서트 고어의 세계에선 유별난 횟수는 아니다. 특히 2022년의 경우 공연장을 찾은 횟수가 160회를 넘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자제한 한 해이기도 하다. 어쨌든 공연장을 찾은 횟수가 좀 있는 편이니 2023년에 올린 클래식 공연 중 인상적이었던 공연을 매우 간단하게 소개해 볼까 한다.



"일개 관객이 뽑아보는 클래식한 공연 연말 결산"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보실 텐가?



1. ‘취향의 영역’ 부문



가. 클라우스 메켈레 & 오슬로 필하모닉

이질적인 북유럽 현지의 바람과 같은 연주였다. 교향곡 2번에서는 꽤 오랫동안 러시아 지배 아래 있었던 그들의 민족적인 성향을 떠올려 보면서 사람 중심의 풍광이 이어졌다. 한편 현악기를 활용해 작은 틀에서 순간순간의 바람을 불어낼 뿐만 아니라, 스산한 새벽의 풍광을 만들어 내었던 교향곡 5번은 자연이 중심이 된 연주였다. 거장으로 성장하게 될 젊은 지휘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지 않았나.


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대체로 템포가 늦고 그 변화를 상대적으로 단조롭게 풀어내었지만, 악단이 품고 있는 이 부드러운 음색은 차이콥스키 특유의 비극의 정서를 정서적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는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위로와 포용과 같은 결말이 인상적이다.


다. 안드리스 넬손스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좀 더 연주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으나, 음악이 살아있었다. 공연을 보는 묘미라고 해야할까.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가는 그런 연주였다. 미완의 브루크너는 죽음의 공포가 아닌 기나긴 병치레의 성가심과 같았고, 주를 찾는 인간적인 외침에 있어선 절대적인 존재가 즉시 기도에 응답을 하고 있으나, 한낱 인간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을 쉽게 캐치하지 못하는 모양새를 띠었다.



2. '빼면 섭섭한 부문'




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역동적이고 숨이 가쁜 연주로 런던 필이 연주한 브람스 1번과는 전혀 다른 연주였다.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던 세단의 런던 필이었다면, 톤할레 오케는 마치 스포츠카에 가까웠다. 순간순간의 표현력이 인상적이고 짧은 순간에 다이내믹을 살려내면서도 에지 있는 표현력도 좋았다. 취향의 영역에서는 벗어난 해석이었지만, 그럼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 체코 필하모닉

또보르작의 재발견과 같은 시간이었다. 교향곡 7번에서 단단함에 기반한, 잔잔한 넝실거림이 슬며시 노출된다. 마치 하드케이스의 두꺼운 책을 통해 하나의 문학을 접한 것과 같았다. 앙상블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올해 최고의 공연으로 꼽았을지도 모른다.


다. 루체른 심포니 &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협연자로 나선 하델리히의 연주는 높고 맑았다. 악기가 개량되면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연주를 통해 고스란히 나타난 듯했다. 또렷하게 만들어내는 소리는 그 자체로 정직했고, 결코 오케스트라 뒤에 숨을 필요도 없는 소리가 저기 저 무대에서 들려왔다.



3. 실내악 부문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 : LAST CONCERT

조화로움에 기대어 필요에 따라 포인트를 주기만 할 뿐, 곡의 풍광을 거시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주조연의 애매한 경계선을 두고 줄타기를 하였다. 한 단체의 황혼기, 마지막 풍광이 그렇게 저물어 갔다.



4. 피아노 부문


가. 미하일 플레트네프 피아노 리사이틀

1-2부에서 동일하게 이뤄지는 결말을 다른 느낌으로 풀어내었다. 특히 1부에서는 쇼팽 특유의 반짝거림이나 정서적 유연함을 감추어며 변칙적인 해석을 들려줬다. 한데 설득력은 그 자체로 흡인력을 갖추어, 꽤 흥미로운 하나의 시놉시스가 되었다.


나. 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세가 있으셔서 컨디션이 들쭉날쭉이었지만, 고대해왔던 후기 소나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고, 점차 안식으로 가는 길목을 조명하는 것 같은 피으니즘. 잊지 못할 것이다.


다.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순간도 있었고, 어린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농도는 좀 옅었어도 차가운 물이 튀고 돌과 같은 파편을 날려보내는 피아니즘이 인상적이다.



5. 관악기 부문



가. 레 벙 프랑세

비슷한 듯 서로 다른 굵기의 붓 터치가 2차원의 평면에 그리고 있는듯했지만, 3차원의 공간을 에워쌌다. 미술적 감성을 가진 프렌치한 바람처럼 느껴진 공연이었다.


나. NET; WORK - 조인혁 클라리넷

독일과 프랑스의 음악을 서로 비교하라는 의도로 꾸려진 레퍼토리였다. 연주에 있어 흔들리는 부분을 캐치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몇 곡 되지 않는 틈 사이로 클라리넷의 다양한 표현을 뷔페처럼 느껴보았다.



6. 오페라 부문


가. 잉글리시 콘서트_헨델, 로델린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바로크 오페라를 들었다. 카운트 테너가 두 명이나 등장하고, 이중창 regina de' Longobardi를 소프라노와 함께 묘한 음색을 표출해 내면서 매우 인상적인 흐름이 이어졌다. 콘서트 오페라 형식에도 세밀한 연기를 펼쳐내던 오페라 가수들의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오페라 노르마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으로 오페라 극장에 오페라가 올라왔다는 점에서, 또 잘 올려지지 않는 작품이 올라왔다는 점에서, 해외 프로덕션을 그대로 가져와 연출도 인상적이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다만 정작 ‘노르마’역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좀 있지 않았나.


다. 2023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로베르토 데브뢰

예술의전당, 드디어 애호가들의 니즈를 읽었네! 싶었던 기획이었다. 막이 거듭될수록 출연진들 사이의 호흡과 여러 부분에서의 만족도는 점차 올라갔다. 그래서 3막의 경우 장이 거듭될수록 박수소리는 크레셴도의 형태를 띠었다.


라. 제20회 대구오페라축제: 살로메

‘일곱 베일의 춤’ 신에서 헤롯왕의 노출 신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쨌든 ‘인간의 동물적인 욕망’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왔다고 결코 변할 수 없음을, 그럼에도 이성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마. 제20회 대구 오페라축제: 엘렉트라

작품 전반적으로 F를 줄이고, T스러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다. 한국 초연이기도 했던 이 작품은 오페라 실연 감상에 언젠가 넘어야 할 허들을 뛰어넘게 한 작품이었다.



7. 리트 부문



베이스 연광철 한국가곡 독창회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시적인 가사가 우리네 마음속에 따스함을 뿌려내기도 하고, 지긋이 마음을 짓눌러 내며 묵직한 여운을 선사하기도 했다. 요 몇 년 사이 접한 한국 가곡 부흥 운동을 떠올려보면 담백해서 더 좋았다.



8. 국내 오케스트라 부문



가. 2023 서울시향 만프레트 호네크의 차이콥스키 비창

말로 형용하기 힘든, 내적으로 간결한 해석에 페르마타가 더해진 것 같았다. 불안한 심리를 감추어 내려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의 행동과 이 속에서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이 크레셴도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뻔하디 뻔한 신파에 매몰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있는 솔루션을 맹신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던 연주이기도 했다.


나. KBS교향악단 X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라흐마니노프 전곡

프레이즈에 따라 한순간에 큰 울림을 강조하기도 하고, 맑은 물줄기의 일부를 구획별로 떨어뜨리듯 반짝거리는 순간도 있었다. 다수의 터치가 상당히 명료한 걱이 가장 큰 특징이다.



9. 연극 부문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객석의 표정을 바꾸는 흐름새를 따라가다보면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극의 종결부엔 씁쓸함을 감추어낼 수 없을 만큼 허탈함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기억에 남는 2023년의 공연을 정리해 보았다. 2023년처럼 무탈하게 2024년도 보내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언제까지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변화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