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나요? 왜 잘 지내나요.
다들 성추행을 당해본 적 있으신지. 세상엔 성추행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여자가 드물다고 하던데, 내 주변에 의외로 그런 사람이 두어 명 있어서 놀랐다. 적은 건가? 난 사실 모두가 피해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놀라웠다. 하긴 내가 혼자서 대여섯 번을 겪었으니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도 있어야 내가 아는 평균이 나오겠다. 불행하게도 난 어려서부터 성추행범을 많이 만나보았다.
성추행범은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지인들에게서 많이 발생한다는 통계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나는 다행히 그런 적은 많지 않다. 다행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생판 처음 보는 초면의 남성들이었다.
인생 첫 피해 경험은 무려 유치원 때다. 미수라고 해야 할까. 웬 성인 남자가 집에 가던 나를 주차장 구석으로 데려가더니 팬티 속을 한 번만 만져볼 수 없겠냐고 했다. 다행스럽게 성교육이 힘을 발휘하여 7살쯤이던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는 제법 젠틀한 추행범...이었어서 내가 끝까지 고개를 젓자 포기하고 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인데 당시에는 심각성은 잘 모르고 그냥 뭔가 이상하단 것만 어렴풋이 알았다. 성인 남성이었다는 기억도 명확하진 않다. 유치원생의 시선이었으니 알고 보면 고작 중고등학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거절에 순순히 포기하고 간 그 어리숙한 성추행범 꿈나무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성범죄자의 길을 단념했을까, 아니면 실패를 발판 삼아 재도전을 했을까. 제발 전자이길 바란다.
두 번째 경험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동네 할아버지였다. 할머니가 봐주던 시절이었는데 학교가 끝나고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 할아버지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자기 성기를 밖으로 꺼내더니 내 손을 잡아끌어 거기에 갖다 댔다. 놀라서 손을 확 잡아 뺐더니 노인이 징그럽게 웃었다. "너네 아빠랑 똑같은 거야~ 괜찮아" 했다. 놀랍고 무서운 마음에 앞만 보고 빠르게 걸었고 노인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집에 가서 손을 박박 씻고 있으니 할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금방 있었던 일을 고했다. 할머니는 혀를 차시며 세상이 무서우니 조심히 다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대낮의 하굣길에 뭘 어떻게 조심한단 말인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손만 박박 씻었다.
세 번째는 중학생 때고, 마찬가지로 하굣길이었다. 그때도 대낮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뒤에서 교복 치마 밑으로 손이 쑥 들어왔다. 중요 부위를 만지는 손길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모자를 눌러쓴 젊은 남자가 계단을 호다닥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피해를 자각하자마자 분노가 솟았다. 동시에 그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계단을 다다다 내려가니 그가 어째서인지 코너 뒤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새끼, 하며 나는 반사적으로 뛰었고 그가 놀랐는지 더 빠르게 튀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대로변까지 달렸다. 그러나 결국 어느 틈엔가 군중 속에서 그가 사라져 버렸다. 열이 뻗쳤다. 어떻게든 그놈을 조지겠다는 일념으로 인생 처음 경찰에 신고를 했다. 생각해 보니 많은 성추행 경험 중 경찰에 신고를 한 건 이때뿐이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경찰서로 가서 여경에게 진술을 하게 됐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경찰이 내 말을 다 받아 적었다. 그 받아 적은 내용을 확인하며 난생처음 페이지마다 지장 같은 것도 찍어보았다. 글에는 내 말뿐만 아니라 표정이나 제스처까지 적혀있었다.
(떠올리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그 사람이 절 만졌어요.
이런 식이었다. 어딘가 연극 각본 같았다. 나는 왠지 가련해야 할 것 같은 성범죄 피해자 역할이다. 정체 모를 의무감이 생겨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어깨를 움츠렸다. 사실 '(개빡치는 것을 억누르며)'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텐데도. 결국 그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놈을 잡지는 못했다.
그 뒤로도 뭔가 많았다. 고등학생 때 알바하던 가게에서 배달을 하던 애 딸린 유부남 아저씨가 나를 끌어안으며 사귀자고 했고, 대학생 때 일했던 다른 가게 40대 사장님도 노래방에서 똑같이 했었다. 한 번은 광역 버스를 타서 잠들었는데 깨보니 옆자리 남자가 내 손을 깍지 껴서 꼭 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직접적인 터치가 있는 성추행 피해 경험은 그게 마지막이었고, 아마 이십 대 초중반 때였다.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게 좀 아쉽다. 이제 정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데.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법적으로는 성인이되 정신적으로는 상상 이상으로 어리숙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 사실을 절대 몰랐다. 그래서 알바가 끝나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노래방에 가자던 알바 사장님을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사장님하고 친하니까, 마감을 하고 가게에서 맥주 한 잔 하고 간 적도 많으니까, 노래방도 별생각 없었다. 나랑 사귀면 술도 끊고 정말 제대로 살겠다던 사장님의 고백을 2시간 가까이 거절하고 거절하고 또 거절하며 속으론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 꼴을 당하면서도 그 사장님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떨어졌던 것 같다. 그냥 친하게 지내던 사장님이 알고 보니 20살 가까이 어린 학생인 나를 이성으로 보고 있었다며 대시하는 그 상황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몰랐다. 난감하면서도 그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다 안다. 그게 얼마나 지저분한 속내인지. 어린애는 모르지만 어른은 '누가 봐도 뻔히' 아는 상황들이 있다. 어린 알바생을 자정도 넘은 시간에 노래방으로 데려가서, 곤란해하는 모습에도 2시간 가까이 놔주지 않고 징징대며 고백을 하는 40대 어른의 속내가 얼마나 악랄한 것인지도 그중 하나다. 본인 또래 여자에게 그랬다간 씨알도 먹히지 않음은 물론이고 두고두고 병신 취급을 당하겠지만 멋 모르는 어린애한테는 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약아빠져서.
나쁜 놈들은 어떻게 그렇게 어리숙함을 빠르게 캐치하는 걸까. 그들은 내가 사회의 단맛 쓴맛을 보고 어느 정도 어리숙함을 벗었을 때부터 놀랍도록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복싱장에 다녔는데 자길 오빠라고 부르라던, 우리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있었다. 내 가슴께를 빤히 보며 요즘 애들은 발육이 좋아, 같은 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관장님에게 말했더니 칭찬하는 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과연 지금 내 앞에서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원래 제 체면과 평판은 끔찍이 중요시해서 결코 아무한테나 그러지 않는다. 만만하고, 잘 대처하지 못할 것 같은 대상을 기가 막히게 골라서 그 앞에서만 주둥이든 손이든 함부로 놀린다.
물론 세상엔 체면이고 평판이고 챙기지 않는 더 나쁜 놈들이 얼마든지 있겠지만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시시한 나쁜 놈들은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뉴스에서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사건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피해자가 뻔한 수작에 넘어가서 나쁜 일을 당하는 스토리를 보다 보면 누군가는 그걸 모를 수가 있나 답답해하지만 나는 그 어리버리함을 이해한다. 잘 모를 땐 그럴 수 있다. 정말 바보 같은 소리에도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것인데, 나는 이십 대 초반쯤까지도 그랬다. 아마 누군가는 더 빨리 머리가 크고 누군가는 더 늦을 수도 있겠지.
나를 거쳐간 많은 성추행범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부모 형제, 친구들, 직장 동료들은 그들의 범행을 알고 있을까.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좀 억울한 일이다. 내가 당한 것이 큰 피해가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자들이 모이고 또 모여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사회를 망치는 것이 아닐지, 그런 면에서는 큰 범죄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 직장 화장실에서 몰카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발각되어 떠오른 김에 내 피해 일대기를 적어본다. 그땐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을까 자책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날 때부터 똑부러질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나쁜 놈들이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