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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함께한 제천의 가을

by 자향자

2025년, 결혼 8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돈이 없다는 핑계로 모시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뒤로 하고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은 여행을 가자는 게 우리 부부의 결심이었다. (상반기는 장모님을 모시고 처남 네와 가평을 다녀왔었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같다. 그간 부모님 그리고 장모님께 얼마나 무심했는지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작은 다짐은 지난주 비로소 이루어졌다.


목적지는 충북 제천. 늦가을의 산새를 만끽하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회사와 연계된 숙소가 있다는 건 굳이 비밀로 하지 않겠다. 여행은 숙소비가 절반이상이니까.) 장모님과의 여행을 고속도로가 시기하는 듯, 평일 즐비한 차량의 행렬에 다소 당황했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도 금세 해소되더라.



평소 1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충북의 제천, 한적한 시골 밥상을 첫끼니로 해결하고 제천의 전경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타기로 결정했다. 연애 시절 아내와 함께 찾았던 곳이기도 한 이곳에 장모님 그리고 딸아이까지 함께하니 기분이 남달랐다.


케이블카를 무서워하는 딸아이의 손을 꼭 부여잡고 정상에 닿았다. 10월 말의 제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산 중턱 곳곳에 갈색이 스며 있었지만, 산은 여전히 푸르렀다. 산 정상이 전해주는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장모님의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뛰어다니는 아이의 웃음소리까지 어우러지며 나는 그저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늦가을의 일몰은 다소 빠르다. 최근에 지어졌다는 한 리조트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숲과 어우러진 우드톤 인테리어, 깔끔한 시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조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비록 늦은 체크인으로 스파는 즐기지 못했지만, 사우나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며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튿날 아침, 산속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조깅길에 올랐다. 오르막길이 이어져 숨이 찼지만, 도심에서 즐기는 조깅과는 또 다른 상쾌함이 내 몸 깊숙이 퍼지는 듯했다.


짧은 하루를 이곳에서 보낸 우리는 다음 날 어딜 방문했을까? 삼한시대에 축조됐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저수지. 제천의 상징 같은 장소, 의림지였다. 지난겨울 딸아이, 아내와 함께 방문한 적 있었다만, 한겨울의 날씨 덕분에 충분히 즐기지 못한 장소이기도 했다.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우리네 식구는 난생처음 오리배를 탔다. 장모님은 꽤 오랜만에 타본다면서 딸아이는 생애 처음 오리배를 타며 물결 위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 순간이 오래도록 그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길 바랐다. 여행을 마치며 장모님께 여쭸다.


“장모님, 여행 어떠셨어요?”

“너무 좋았어. 날씨도 받쳐주고 말이야.”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늘 조심스러우셨을 텐데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이실까.



제천. 부모님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지였다. 자연 전경을 볼 수 있는 케이블카, 평온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의림지까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곳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1박 2일의 일정이 아니라, 세대가 함께 쌓은 추억이었다. 앞으로도 매년 한 번은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한다. 2026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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