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주고받는 게임. 한국말로는 탁구라 부른다.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대부분 라켓을 쥔 선수들의 공을 라켓을 처내는 빠른 손놀림을 떠올리겠지 싶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은 조금 다르다. 출근 후 매일 아침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하면 메일함 옆에 떠오르는 숫자들이 눈에 단번에 들어온다. 맞다. 그것은 곧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의 무게와 같기도 하다.
메일함 속 작은 숫자로 압박이 시작된 하루는 공람으로 한번 더 훅을 들어오며, 하루 종일 처리해야 할 나의 업무를 강제로 나열하게 만든다. 뒤섞여 있지만, 이를 정렬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며, 처리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다.
마우스 클릭 한 번이 사실은 어마무시하게 두려운 요즘이다. ○○부서, □□부서에서 날아온 쪽지와 공문들. 수십 개의 업무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순간, 머릿속은 이미 지끈거리기 일쑤다.
직장 생활 10년 차. 일의 중요도를 따지는 건 익숙해졌지만, 답답함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업무에 부담이 있는 날엔 이른 출근을 하자마자 메일함에 찍힌 숫자 ‘1’을 확인하고 공문을 올리던 날도 있었고, 일과 후 뒤늦은 시간까지 남아 펑크를 막기 위해 업무를 처리하던 나날도 있었다.
회사라는 곳은 결국 끝없는 핑퐁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치 탁구라는 게임에서 벌어지는 핑퐁 같은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회신 바랍니다.”
“의견 없을 시 해당 없음으로 간주합니다.”
업무의 언어는 마치 경기 규칙처럼 세밀하다. 나는 공을 보냈다. 이제 네가 받아쳐야 한다. 숨 돌릴 틈은 그때뿐이다. 상대방이 공을 쳐냈다면, 다시금 나의 차례가 도래한다.
속도감 있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고, 때론 갈등 상황에 처하며 피로감에 젖어버린다.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당장 내일이 두려운 이유다.
은퇴 후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벌써부터 느긋한 삶을 상상한다. 최근 충남 부여라는 곳에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도시에 살고 있다면,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그저 내가 만들어낸 올곧은 기준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정답이지 않을까.
효율과 성과를 좇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부럽다. 하나, 다른 삶을 꿈꾸는 본인의 모습을 그린다면 다가올 2026년을 위해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회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홀로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임을 부디 잊지 않길 바란다. 회사가 없더라고 우리는 분명 생존할 수 있다. 당신의 비교가 당신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임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자립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