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의 대가

by 자향자

2024년 7월 다시 찾아온 여름, 성수는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는 잦아졌다. 그럼 그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집에서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혼자 들어가서 익숙한 듯 캔맥주 두 개를 골랐다.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다가는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홀짝홀짝 맥주를 마셔댔다.



솔직히 말해 성수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영의 얼굴을 보기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건물 1층 공실은 벌써 7주째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예 문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족발집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냄새 문제로 제안을 거절했다.



부동산 사무실을 차리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온 적 있었지만 면적이 너무 넓다며 부담스러워했다. 면적을 절반으로 나눠서 임대하는 걸 고려해 봤지만, 적어도 500만 원 이상의 공사비가 나왔다. 두 칸 모두 세입자가 확실하면 모를까, 한쪽이 안 들어오면 낭패만 보는 셈이었다.



헬스장을 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은 1층이 아닌 지하를 선호한다고 했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건지. 어쨌든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자는 350만 원씩 매달 나갔다. 월세 수익은 275만 원이었으니 무려 75만 원이나 부족했다.



공무원 월급 270만 원. 생활비를 빼면 솔직히 빠듯했다. 성수는 가계부를 다시 열어 줄일 수 있는 항목들을 훑었다. 그간 외식을 줄여왔고, 옷은 당연히 안 샀다. 꼭 필요한 경조사만 지출했으며, 요금제는 진작에 알뜰폰으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줄이고 줄여도 한 달에 50만 원이 한계였다. 나머지 비용 25만 원을 충당하기 위해 적금을 깼다.



성수는 적금 해지 확인 문자를 보며 혼잣말로 되뇌었다. '이젠 모아두던 거까지 쓰기 시작하네.' 두 번째 캔맥주를 따 한 모금 마시며 성수는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봤다. 7월 하늘은 저녁 7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밝았다. 이내 핸드폰을 열어 부동산 카페에 들어갔다. 때마침 '1층 상가 공실 해결 후기'라는 글이 있었다. 클릭.



내용은 매우 상세했다. 글의 요지는 무려 3개월의 공실 끝에 약국이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임대료를 20퍼센트 낮추고 인테리어 지원을 해줬다는 그의 말에 성수는 눈이 번쩍였다. '약국이라.' 그가 아직 시도하지 않은 업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약국은 전문적인 분야이고 개인 약국은 쉽지 않다고 어디서 본 것 같았다. 그만의 정답은 프랜차이즈 약국이었다. '프랜차이즈 약국 문의' 라며 짤막하게 스마트폰에 메모를 했다. 집에 들어온 건 오후 9시 즈음. 지영이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왔어?"

"응."

"밥은?"

"대충 먹었어."


지영이 성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술 마셨어?"

"캔맥주 두 개."


이내 지영이 아무 말없이 책을 다시 들여다봤다. 씻고 나온 성수를 보며 지영이 물었다.


"1층 문의 있어?"

"아직."

"혹시 약국은 생각해 봤어?"

"나도 생각 중인데, 어떻게 알았어."

"카페 글 같이 보잖아. 오늘 약국 관련 글 봤어."

"알아보려고."


지영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프랜차이즈 약국은 입점 기준이 까다롭대. 근처에 이미 약국 있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조사해 봤어?"

"응."


자신이 편의점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는 동안 지영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미안했다.


"근처에 약국이 하나 있어. 마트 안에."

"마트 안이면 별도 매장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어. 확인해봐야 해."

"오늘은 자."

"조금만 보고."

"내일 해도 돼."

"당신 요즘 얼굴이 안 좋아. 알아?"

"나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니까 그렇지."

".... 자자."


성수는 침대에 누웠지만 솔직히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마이너스를 가리키는 숫자들이 보였다. 이런 밤은 그에게 자주 찾아왔다. 잠이 안 오면 핸드폰을 열고 카페 글을 읽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를 가리켰다. 이럴 때 성수는 조용히 일어나 어두운 거실에 앉았다.



창밖엔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성수는 그 빛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구체적인 생각 없이 그냥 무거웠던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었다.



다음 날 점심, 이복순이 언제나 그렇듯 복도를 닦고 있었다. 지나가던 성수를 보면 복순이 그에게 말했다.


"박 주임님, 얼굴이 왜 그래요?"

"왜요?"

"요새 잠 잘 못 자요?"

"아. 네."

"부동산 때문이죠?"


주변을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다.


"1층 공실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어요."

"얼마짜린데요?"

"150이요."

"생각보다 비싸네."

"내는 이자보다 월세가 적어졌어요."

"버틸 수 있어요?"

"월급으로 버티는 거죠."

"그렇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성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박주임 님, 나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 해봤어요?"

"뭐가요."

"공실 나면, 박주임 님 말대로 이자가 월세보다 많아진다는 상황요. 그 상황도 미리 생각해 본 건지 궁금해서요. 아니면 그냥 무작정 잘 될 거라 생각했는지."

"반반이었어요."


이복순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카트를 밀다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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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작가, 마라토너. 친구같은 아빠가 되길 희망하며 메신저로써의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글쓰기로 인생을 기록합니다. 일상의 조각을 모아 삶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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