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ssion Azumma Mar 03. 2024

수선화를 데려왔다

이제부터 우리집의 가화(家花)다.

꽃말 : 자기 사랑, 자존심, 고결, 신비

토요일 아침부터 둘째가 떡꼬치를 해 먹겠단다. 떡도 있고 소스도 만들어둔 게 있다. 저건 해달라는 소린데. 내가 잠시 대답이 없자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손을 걷어붙인다. 그래 해봐야지 그런 것도. 진심 어린 응원이라기 보단 주말아침 늘어지고 싶은 엄마를 어쨌든 배려해주고자 하는 아이 마음에 대한 퉁명한 대답? 그런데 시작부터가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예 모르면서 덜컥하겠다고 하니 될 리가 없다.


"엄마, 이거부터 해야 해요?"

"엄마, 이거 다음엔 이거예요?"

"엄마, 엄마, 엄마~~~~~~"

"이럴 거면 그냥 엄마한테 해달라 하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일어서서는 결국 내가 하게 되었다. 아이는 미안해하고 또 그 모습에 그냥 해줄 걸 후회하고 있는데 남편이 한 마디 보탠다.


"니는 둘째한테만 꼭 짜증을 내더라. 큰 딸한테는 안 그러면서"


이건 또 무슨 소리? 가만히나 있음 중간이나 갈 텐데 확 짜증이 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화를 내어봤자 집안 분위기만 이상해질 게 뻔하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지가 둘째라 둘째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늘 둘째만 감싼다. 큰 애가 어릴 때 내가 얼마나 큰 애를 닦달하고 혼냈는지 일하느라 바빠 집안일엔 관심도 없었던 그때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시작하면 끝도 없을 얘기를 해봤자 그 노무 둘째의 설움? 앞에 이길 장사는 없다. K 장녀의 설움은 아나? 그러고보니 나도 똑같은 모양이다. 이기적인 김씨들과 살다보니 나 역시 이 한 몸 지키려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집에서 둘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갑을 관계가 아주 명확한 집이다. 나도 둘째인 남편에게 지고 우리 아들도 둘째 누나를 이길 수 없다.


뾰로통하지만 티 내지 않고 남편이랑 마트를 갔다. 냉장고는 왜 수시로 비어서 이 기분으로 장까지 봐야하냐고. 속으로 부글부글이지만 티내봤자 내 손해다. 참을 인 참을 인.. 


'나중에 내가 죽거든 얘들아 꼭 화장을 해서 사리가 몇 개가 나오는지 꼭 확인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작게 탑하나 만들어다오. 그리고, 그 탑비에는 [둘째에게 이기지 못한 장녀의 한] 이라고 적어주고 말이야'


마트는 신기한 곳이다. 기분이 나빴는데 이것저것 할인율 높은 것들이며 필요한 것들 아이들 좋아하는 간식까지 고르다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엄마~역시 제가 좋아하는 사탕 사 오셨네요"

"아빠는 맨날 작은 누나가 좋아하는 거만 사 오시는데 엄마는 골고루 사 오고"


봤나? 남편? 둘째 유전자를 교묘하게 사용하는 이기적인 인간아!! 아들도 오전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늘 둘째 누나한테 기빨리는 아들의 소심한 복수? 만년 을인 아들의 소심한 반격이다. 아빠는 아들의 의중은 파악도 못한 채 아들 속 터질 소리를 또 한다.


"내가 둘째라 우리 둘째 좋아하는 걸 잘 알지~~~~~"


순간 마주친 아들과 나. 우리 둘 다 어깨 한 번 으쓱 그럼 그렇지란 뜻이다. 반성 그런 건 없다. 지가 최선이고 지만 좋음 되는 인간이다. 오전에 내가 자기 말에 상처받았을 거란건 아마 상상도 못 할 거다. 다음 세상이 있다면 남편아 꼭 첫째 딸로 태어나서 둘째인 남편과 만나라!!!!! 오늘도 소심하게 속으로 되내어 본다. 


마트에서 수선화 모종 할인을 하기에 고이 모셔와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건 내가 그에게 하는 세련된 복수다. 


'이 꽃말은 알까?'

이제부터 수선화는 우리 집 대표 꽃이다. 자기에 대한 사랑은 좋으나 고결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되자. 이기적인 모습보단 수선화의 참 된 꽃말 처럼 말이지. 내 탑비가 세워지지 않길 사실은 바라면서 오늘도 잘 참았다 생각하기로 했다. 이기적인 그들과 사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다 하다 집에서 닭을 튀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