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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Jun 13. 2024

하나의 감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첫째인 나는 욕심, 둘째 출신 남편은 피해의식이라 한다.

 어젯밤 소소한 남매의 난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지나치게 거창하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나름 무게감 있는 주제이니 일단 가보자고. 그렇다고 심각한 일은 아니다. 집집마다 있는 서열관계, 보이지 않는 그 쟁탈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삼 남매를 키우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지 새끼는 다 이쁘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 이쁘지는 않다. 대부분 이쁘지만 좀 더 이쁠 때와 미워죽을 때가 있을 뿐이다. 이건 똑바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부모라고 자식이 무조건 이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셋 다 똑같이 이쁜 건 내가 얼큰하게 취해서 분별력이 없거나 누가 하나 아파서 간호를 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미묘한 애정도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가령, 내가 안경을 벗고 휴지를 찾고 있을 때 눈치 빠른 막내가 어디선가 뿅 나타나 티슈 한 장을 건네고 가는 순간, 이 세상 누구보다 막내가 사랑스럽다 뭐 그런 거라는 얘기다. 

 

우리 집 둘째는 어릴 때부터 둘째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둘째로 서러움이 많았던 아빠에게 둘째이기 때문에 이쁨을 받았고 둘째이기 때문에 늘 항상 에브리데이, 에브리웨어 먼저였다.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나포함 셋(첫째 둘, 막내 하나)은 늘 불만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째는 모든 것에서 우선순위를 가져야 하고, 그렇다 보니 첫째나 막내가 서러워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어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참 사춘기이기도 한 둘째는 괜한 트집으로 막내를 괴롭히고 아직 2차 성징도 오지 않은 막내는 뿌앵(까지는 아니지만) 혼자 토라져서 방 안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유일하게 누나를 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산에 다녀오다가 남편과 어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여보, 둘째가 막내 너무 괴롭히는데, 막내 복싱 배우고 싶대. 아직 키가 안되니까 복싱으로 어퍼컷을 날리고 싶다나. 물론 진짜 그러지는 않겠지만 오죽하면 그러겠노"

"하하하, 복싱. 좋지. 나중에 둘째 오면 막내를 좀 이뻐하라고 해야겠다"

"아니, 이보세요, 둘째가 막내를 이뻐해 줄 이유는 뭔데? 그냥 안 괴롭히면 되는 걸. 다 지가 하려고 하니까 다툼이 생기고 기 약한 막내만 말도 못 하고 서럽잖아."

"둘째니까 피해의식이 있어서 그렇다. 내가 잘 안다"

뭐라카노. 이 영감탱이가. 둘째라고 싸고 끼고 키워놓고 피해의식은 개뿔. 욕심이지!

"아니, 그게 어째 피해의식이고? 누가 지를 둘째라고 서럽게 키웠나? 우리 집안 서열 1위구만"

"둘째는 피 속에 피해의식이 있다. 니는 모른다. 둘째가 얼마나 서러운지"

하... 그건 옛날 어르신들 얘기고 우리가 자랄 때나 있었을 얘기지. 우리 친정 엄마도 둘째라 서러웠다는 소리를 자주 하신다. 그만큼 예전의 이야기란 말이다. 물론, 이 시대에도 둘째의 소외와 한이 존재할 수도 있다. 아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집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특권이 있으면 모를까. 


 집에 오자마자 둘째 방의 구조를 바꿨다. 며칠 전부터 해달라고 했던 있었다. 주말에나 해주려다가 혼자 낑낑대며 책상을 옮기고 피아노까지 옮겼다. 남편은 불러도 대답 없고 끝나고 나니 "이걸 어찌했대? 부르지!" 아나 염병할. 이기적인 둘째 같으니라고! 

 

 지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으니 오늘 밤 긴 대화를 좀 해봐야겠다. 나도 모르는 둘 만의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욕심인지 피해의식인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줘야겠다. 막내와도 따로 시간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겠지. 둘째가 모든 면에서 그런 건 아니다. 언니에게 빌려 준 33,400원을 아직 씩씩대면서도 유예해 주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욕심이 용심이 되지 않게! 건강한 욕심이 될 수 있게 가르쳐 줘야겠다. 하, 오늘 밤도 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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