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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C Mar 22. 2023

‘좋은 날, 하루’ 저축하기

술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한때 와인만 마셨다. 주변 가족과 친구들은 그 사실을 알고 와인 맛은 잘 모르겠다며, 비싼 것과 싼 것의 맛 차이가 있느냐 종종 물었다. 그럼 나는 비싼 것은 몰라도 싼 것은 먹어보면 싼 맛이 난다고 답한다. 최근 화제가 된 ‘더 글로리’에서 선물로 들어온 비싼 와인을 대신 가져가라며 건네는 하도영(부잣집 고용주)에게 자신은 맛도 모른다며 한사코 받기를 거부하는 운전기사 장면이 있다. 이때 하도영은 편의점에서 싸구려 와인을 사 비교해 먹어보면 알게 되니 기어코 가져가라 하는데 나는 크게 공감했다.   

  

우리는 아주 비싼 와인은 사 먹지 못하지만, 집 앞에 홈플러스가 있어 장 보러 갈 때마다 늘 주류코너를 구경한다. 물론 구경에서 끝나지 않고 좋은 날 마실 2~3만 원대 와인 1병, 부담스럽지 않게 꺼내 먹을 가성비 와인 ‘롱반(longbarn)’ 1병을 사서 와인 냉장고에 쟁여두곤 한다. 그러다 최근엔, 양주에 취미를 붙인 남편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가정 경제 사정에 따라 우리 집 와인 소비량이 크게 줄었는데, 지난 주말 산책하다 ‘와인곳간’이라는 우리 동네 새 매장을 발견하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번 달 아껴야 한다며 만류하던 나는 구경만 하고 나오겠다는 남편 손에 못 이기는 척 들어갔다. 참새 같은 우릴 보고 이곳을 와인곳간이 아니라 와인방앗간으로 이름 지었으면 더 어울렸겠다 싶었다. 결과는 어떻겠는가. 평점 좋은 와인에 가성비가 괜찮다는 위로를 뒤집어씌우고 호기심을 얹어 처음 보는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왔다. 경제적 저지선을 넘어 마음은 무거웠지만 그래도, 와인 1병과 함께 할 좋은 날 하루를 저축했다는 생각에 설렘이 몽글몽글 한쪽 구석에 뭉쳐있다.

산책 중 구입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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