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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C Mar 27. 2023

오래된 미래

토요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스-윽 바닥을 쓸며 밀리는 소리에 설렘이 형체를 갖춰 배달됐다는 것을 알았다. 허리를 숙여 문 뒤의 그것을 줍는다. 아빠가 아닌 내가 배달시킨 첫 신문.


내가 어릴 적, 아빠는 퇴근 후 늘 신문을 들여다봤는데 언제부턴가 그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이집 저집 그렇게 사라졌던 신문이 다시 눈에 띈 건 작년 도서관에 근무하면서부터다. 신문은 당일 또는 전날 소식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특성상 관내 열람만 가능하다. 덕분에 연속간행물 코너에 앉아 신문 읽는 이용자를 매일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모든 정보를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세상에 종이신문을 보는 젊은이는 보기 드물고 나 역시 신문을 자료실에 비치만 했지 볼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요즘 읽고 있는 책(『세이노의 가르침』)에서 경제지 하나와 주간지 하나 정도는 읽어야 경제 게임의 법칙을 알지 않겠냐는 글을 보고 즉흥적으로 신문 구독을 신청했다. 평일에 도착했다면 출근길 일단 한쪽 구석에 던져놨을 신문은 다행히 쉬는 주말 처음 도착했다. 나는 따끈한 그것을 가방에 담아 카페로 갔다. 책은 쉬이 군중 앞에 꺼내 읽을 수 있었지만, 신문을 꺼내려니 나 보란 듯 커다란 크기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젠체하는 기분이 들어 접고 또 접어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읽었다. 다음 지면으로 넘길 때마다 접어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지만, 다행히 가벼운 무게의 신문은 너풀너풀 잘도 넘겨지고 잘도 접혔다. 광고를 제외하더라도 18면에 다다르는 지면을 모두 다 읽는 데엔 꽤 시간이 걸렸는데 주 6일, 날마다 도착하는 신문과 주간지를 시간상 소화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너무 바쁠 땐 헤드라인과 큰 기사만 읽어 맥을 유지하기로 해본다.      


매일 경제 라디오를 듣고 있어 큰 이슈는 대강 알고 있을거라는 안일한 예측과 달리 그 내용은 신문의 아주 적은 부분만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 내용은 신문을 읽지 않았더라면 전혀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이라 적잖이 놀라며, 읽는 세월이 쌓이면 경제적 관점이든 기회를 포착하는 눈이든 큰 자산이 되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과거의 삶의 방식에서 미래를 찾는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는데, 신문이야말로 오래된 지면에 미래를 담아오는 오래된 미래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2023. 3. 25.(토) 첫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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