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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C Mar 28. 2023

해방일지

주말 저녁 운전하다 자동차 한쪽 전조등 수명이 다한 것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카센터였지만, 직접 해결해 보기로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전조등을 직접 갈아보면 앞으로 전조등에 관한 한 카센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이는 다른 부품 셀프 교체로 확장될 수 있다. 둘째, 자신의 집을 직접 짓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넘겨주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 소로(『월든』 저)의 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을 직접 들여다보고 만지고 고쳐보고 싶었다.

   

‘전조등 가는 법’ 블로그 2편쯤 보고, 수명 다한 전구를 빼내 모델명을 확인했다. 쉽다고 생각하며 호기롭게 전등을 사러 갔으나 그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빼낸 전구 모델이 마트에 없었고, 안내판을 보니 내 자동차에는 다른 모델이 들어가야 한다고 적혀있다. 상향등과 하향등, 전조등의 용어와 두세 개 모델이 뒤엉키며 이때부터 머리가 어지럽다. 한참을 그 앞에서 인터넷을 뒤져보다 자동차 양쪽에는 총 6개의 전구가 있는데 잘못된 전등을 빼냈음을 깨닫는다. 어찌어찌 올바른 전구를 찾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더 어려웠다. 좁고 어두운 자동차 내부에서 전구가 감춰진 뚜껑을 열어내는 것부터 진땀이 났고, 5분이면 되겠거니 했던 걸 한 시간 동안이나 낑낑댔다. 괜히 전문가를 찾는 게 아니라며 포기하고 카센터를 가고 싶었다. 아파오는 허리, 어깨와 손이 내게 이런 일엔 전혀 재능 없으니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앞 좌석에 털썩 앉아버렸다가 다시 한번 검색하여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고 심기일전 시도한다. 그리고 드디어... 한 시간 반가량의 씨름 후 전조등 갈기에 성공했다.

      

생각해 보면, 걸음을 뗄 때도, 신발 끈 매기를 배울 때도 큰 노력이 필요했다. 어른이 된 후 이런 것을 다 잊고, 배움에 따르는 노력과 인내를 쉽게 ‘비효율’이라는 단어로 거칠게 포장해 다른 사람 손에 맡겨왔다. 전문가에게 달려갔더라면 금방 해결했을 일, 주말 귀한 시간 낭비했지만 해내고 나니 결국 가장 잘 보낸 시간이 되어있다.

     

한낮의 소동이었던 전조등 직접 갈기 성공의 여파일까. 그날 밤 문뜩, 치렁치렁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 셀프 헤어컷을 검색한 지 1분 만에 직접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절대적으로 전문가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시원스레 잘려 나간 머리카락처럼 선택의 여지없이 전문가를 향해 달려가야 했던 숙제에서 해방된 기쁨이 느껴진다.

비좁고 어두운 전조등 입구와 씨름한 끝에 얻은 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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