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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구 Dec 14. 2022

벗어나고 싶은 스물다섯

누구에게나 슬픈 기억은 있다

  부러웠다.


  별다른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군 입대 전까지는 어찌어찌 굴러가던 집안이 제대 하고 돌아오니 기울다 못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그때 알았다.


[ 아, 다시 학교 가기 글렀구나 ]


공부에 큰 뜻이 있다거나, 학교 생활에 정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안 했을뿐더러 대학도 학과도 수능 점수에 맞추어 다닌지라 애틋함은 없었다. 그저 걱정 없이 학교를 오가며 공부하는 친구들, 방학이면 해외로 여행 가는 친구들의 삶이 부러웠을 뿐이다. 친구들은 적어도 당장 먹고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제대하고 이틀 만에 아르바이트 구해서 일을 나갔다. 군인티도 못 벗은 빡빡머리로 취사병이었던 특기를 살려 술집 주방보조로 들어갔다. 오후 4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 손님이 많으면 새벽 4시까지. 그렇게 좁은 주방에서 야채도 다듬고 생선도 굽고, 탕도 끓였다. 제대하면 두 번 다시 요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건만, 입에 풀칠이도 하려면 별수 있나 해야지.


겨울의 찬 기운이 채 물러가기 전이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갈 때면 두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오들오들 떨어가며 집까지 걸어가는 새벽, 일 터 근처 편의점에서 산 작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 라면이 익을 동안 두 손 꼭 쥐며 걸어가다 라면이 익으면 먹으면서 걸었다. 새벽시간 누가 볼 걱정도 없거니와 본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통장 잔고 십몇만 원. 주머니에 가진 돈 몇 천 원. 내 코가 석자인데 체면 따위 무엇이 중요할까.




좁은 주방, 매캐한 연기와 뒤섞인 음식 냄새 그리고 죽은 생선 눈깔을 보며 지낸 지 두 달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하고 한시 진도 채 안돼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마도 꺼져가는 생명줄을 잡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신 듯했다. 그리고 2년 뒤 어머니도 같은 달, 같은 병원에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나의 25살 5월의 봄. 나는 그렇게 어버이날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있어야 했다. 이제 해마다 돌아오는 가족의 달 5월은 내게 그저 두 분의 기일 있는 달 일 뿐이다. 5월이 싫어졌다.


집 한켠에 위치한 달력은 2015년 5월을 끝으로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벽시계도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인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찌어찌 넘어갔건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세상에 혼자 남았을 때는 마음이 허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루하루 늘어 가는 건 그저 술과 끊었던 담배뿐이었다.




출처 : https://www.instagram.com/


SNS 속 세상에는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막 대학 졸업을 한 대학 동기, 일찍 취업해서 벌써 한자리 차지한 친구, 배낭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하던 군대 동기까지 저마다 행복한 사진들로 가득했다. 반면 내가 하고 있는 거라곤 해가 저물어가는 어두운 방 안에서 친구들 사진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이 방 안에서 환하게 빛나는 건 SNS 속 세상 사람들 휴대폰 액정뿐이었다. 죽은 생선 눈깔을 하고선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다 이내 SNS를 삭제하고 휴대폰을 엎었다. 그리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한동안 그렇게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꽤 흘러 30대가 된 지금도 20대 중반 힘들었던 기억이 잊을만하면 불쑥불쑥 떠오른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잊지 말라며 감정을 두드린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도 지인들과 떠들며 웃다가도 이 기억은 아무 이유 없이 갑작스레 나를 찾아와 감정을 망가뜨려 놓고 사라진다. 2015년 5월. 이제 그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시간에 머물러있다. 마치 글을 쓰는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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