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ne Breaker 1857, Henry Wallis
The Stone Breaker 1857, Henry Wallis
영국의 사실주의 화가인 헨리 월리스가 그려낸 돌깨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돌을 깨는지 앉아 쉬는지 애매한 이 그림 속 남성은 놀랍게도 이미 사망한 상태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한 점의 노동력이라도 떼어내기 위해 노동을 시켰고 일할 능력이 없는 자들은 죽음의 문턱처럼 처참했던 구빈원에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화가는 영국의 형편없는 노동정책, 구빈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붓을 들었을테다.
어제 대한민국의 한 노동현장에서 23살 된 청년이 40도의 체온으로 앉은채 죽음을 맞이 했다.
폭염과 혹한의 극악한 기후환경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19세기 국가가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내지 못했던것처럼 자연재해라는 변명을 대고는 있지만, 역시 21세기 역시 국가가 노동자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다.
200년이나 지났음에도 노동자들은 살아내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갔다가 목숨을 잃어버리는 일이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것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인간이 적어도 먹고 살고 살아가는 상황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그 어느 하나 박탈당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가난도 노동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가난한 자를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하다고 더 박탈당하거나 차별받아 서럽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노동하는 자가 모두 최고의 근무환경에서 동일하게 일하는 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어떤 노동환경이든 안전하다고 믿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