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은 성경적인 배경이 있는 교리이다. 그 배경이 되는 성경 구절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 4-5).
하지만, 예정론만큼이나 논란과 갈등을 불려 일으키는 신학 주제는 없다. 특히,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갈등이 심하다. 심지어, 개혁주의 노선을 따르는 일부 개신교단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갈등이 있다. 갈등의 중심에, 하나님의 예정이 사람의 자유 의지를 제한하며, 불공평하다는 주장이 항시 있다. 과연, 이러한 반대 주장은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합당한가? 저자는 몇 가지 관련된 신학적 배경을 살펴본 후, 반대 주장에 대응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속성
사람의 속성과 다른 하나님 속성을 몇 가지를 열거해 보자. 하나님의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불변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모든 곳에 계실 수 있다. 이에 비해, 사람은 시간, 공간, 능력의 한계 속에서 존재한다. 한계 속성을 지닌 사람의 예정과 하나님의 예정은 그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예정은 스스로, 영원히, 반드시, 어디서나 이루시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예정은 초월적 개념이다.
성경에 나오는 생명, 구원, 예정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다. 특히, 생명이라는 단어는 육체의 목숨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다음 구절에서 "생명"은 우주적인 시간이나 죽음의 한계를 초월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6)
다음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예정을 말해준다. 여기에서, "예정"이란 영원 속에 있고, 사람의 시간 개념에 한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 4-5).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시다.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예정도 영원하다. 하나님의 예정은 창세전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일반적인 이해로 물어보자? 천국이 있다고 믿는가?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믿는가? 죽음 이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믿는다면, 왜, 창조 전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믿을 수 없는가?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다.
예정을 경륜으로부터 따로 떼어서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경륜을 가지시고, 천지를 만드셨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는 성경의 큰 주제,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정이 들어 있다. 구원과 하늘나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예정은 사람에게 꿈과 예언 등으로 밝히 또는 희미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예정은 환상과 계시로 드러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예정은 때가 찰 때까지 사람에게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예수의 출생, 사역, 고난, 부활은 성경에서 예언되었지만, 사람들은 이 일들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예수의 출생, 사역, 고난, 부활은 이미 성취된 예정이다. 앞으로 성취될 예정인 예수의 재림, 심판,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 예언, 계시등으로 감추어져 있다. 환상과 계시는 상징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은 사람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때가 언제일지 모른다. 특히,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천사들도, 이 땅에서 예수께서도 몰랐다. 이와 같이, 인류의 구원 예정, 개인의 구원 예정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비밀이다. 그래서, 구원의 예정은 사람의 자유의지와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에게 불공평 한가?
기독교인 중에서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이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주장은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은 예정 교리를 사람의 운명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예정교리를 운명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들도 있다. 하나님의 예정을 운명(命運)으로 보면, 사람의 노력이나 자유의지는 무효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정을 사명(사명)으로 보면, 사람의 노력이나 자유의지는 유효하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초청하신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은총은 "누구든지"에게 이므로, 공평하다. 하나님의 경륜 예정에 대한 사람의 책임은 개인의 자유 의지로써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다.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고, 구원을 받는다(요 11:26; 요 10:9).
하나님의 예정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는가?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그 대상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구원을 서술할 때와 사람의 입장에서 구원을 서술할 때 그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 경륜하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구원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예수를 통해 은총 입을 자녀들을 예정하셨다.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 위해서,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예수를 구원의 주로 믿고 따라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경륜 예정과 사람의 자유 의지, 둘 다를 말한다.
하나님의 경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류 구원과 하늘나라에 대한 예정, 심지어, 사람의 자유의지까지도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분이 그것을 깨는 예정을 하시지 않는다. 이에 관하여 가톨릭 교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의 자유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진리와 선을 분별하는 능력과 맞을 때, 그리스도의 은총은 우리의 자유와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은총의 작용으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자유를 가르쳐 주시어 교회와 세상 안에서 당신 일의 자유로운 협력자가 되게 하신다(1739).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며 당신의 영원한 경륜 안에서 예정되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불공평한 예정을 하시지 않는다. 사람은 자유 의지로써 악을 떠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이로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예정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 속성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존재 속성이 사람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고, 사람의 속성, "자유의지"도 하나님의 존재 속성을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협력한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예정은 영원 속에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때가 찰 때까지, 사람에게 환상, 계시, 예언, 비밀 등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나거나 감추어져 있다. 감추어진 예정이 개인 구원에 불공평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에게 불공평하지 않다.
이러한 이해 위에서, 도입에서 언급한 예정에 관한 성경 구절을 다시 읽어보자.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