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네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출 19: 5~8)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 3)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
~~~~~~~~~~~~~~~ Bible ~~~~~~~~~~~~~
야훼,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칠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으로 주시겠다고 하신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친히 아담과 그의 여자와 함께 식사를 하시며 많은 것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여기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율법과 계명을 모세로 가르치고자 하신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칠십 인은 하나님을 보며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였다.
이는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그들은 제단 앞에서 제물을 나누어 함께 식사하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그들이 산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의 ‘보다’(히브리어: ra'ah)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시로 ‘보다’(히브리어: hazah)와는 다르다.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식사를 나누며 교제하는 그들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식사를 하며 교제하여야 한다.
산 중턱에 장로들은 아론과 홀과 함께 머물고,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산속 깊이 더 들어간다. 모세는 만 사십일(四十日, 四十夜)을 머물게 된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야훼의 가르침을 들은 것을 글로 기록하여 백성에게 낭독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서약을 할 때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려는 뜻에 있다.
앞에 19장에서와 24장에 나타난 하나님이 주신 법도(율법과 계명들)를 백성에게 가르쳤다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언약서(정확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뜻)를 낭독하고 구속의 의미로써, ‘언약의 피’(훗날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나타내지만)로 제단에서 취한 피를 백성들에게 뿌린다.
이것이 오늘날에 구교(가톨릭)에서 행하는 향과 성스런 물을 신도들에게 뿌리는 행위이다. 언약의 피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시는 피인 것이다. 언약서는 계약의 조문인 것이다. 또 피로 맺은 언약(조약)은 중대한 계약임을 뜻한다. 피는 바로 생명을 의미하므로 언약을 어길 때는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중대사이다. 그리고 피는 생명을 쏟아 죄를 벗겨주는(레 17:11) 속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애굽 성경공부에서>
세상 사람들은 신을 창조하여 종교화로 섬기는 사상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든 신(神)은 실존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신들은 인간의 정신적 세계에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노아홍수 이후에 인간들은 두려움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로는 물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그래서 영웅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은 이유도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니므롯의 사상이 무엇일까?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왔더라.」(창세기 11:2,3,4,5,)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들의 왕국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왕국이 세워졌다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고 한 것이 인간의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왕국시대는 인간중심의 사상에 뿌리인 니므롯의 사상에 있는 것이다.
인간왕국의 구조는 크게 둘로 나눠볼 수가 있는데, 첫째는 통치를 위한 법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종교의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종종 인간제국에서는 종교를 말살하고 오직 법제도만으로 다스리려는 인간역사의 흔적들이 많다. 그 대표적으로 아직도 존재하는 인간왕국은 북한을 들 수가 있겠다. 북한의 뿌리는 조선의 제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조선의 전통성을 강조하면서 김일성 사상으로 조선인민국을 세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조선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고려국의 3백 년의 역사는 파란만장했었다. 그 틈을 이용해 정도전이란 인물이 ‘민초사상’으로 혁명을 일으켰으며, 종교를 말살하고 유학(儒學-중국공자사상)을 도입하여 법제도와 왕권(하늘이 내린 왕) 제도로 민초를 다스리는 국가였다. 즉 법제도는 있으되 종교제도는 배제한 왕국인 것이었다.(어찌 보면, 공산주의의 근본이 되는 사상주의 왕국) 여기에서 희귀한 현상은 양반들은 왕을 신격화하지 않았지만, 민초들인 백성들에게는 왕을 신격화로 여기게 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의 나라들이 곳곳에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고 한 것이 인간세상이었다는 것이다. 니므롯이 한 곳에 인간들을 모아놓고 인간중심의 세상을 세우려는 것을 보신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을 보았을까?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으며, 이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던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중심의 세상을 세우려는 니므롯의 태도를 보시고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말살된 한 사상에 복종하는 인간들을 보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무력으로 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언어의 혼란을 이용해서 흩어지게 하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여러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온 땅에 흩어져 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인간중심의 사상으로 왕국을 세우며, 인간을 국법과 종교로 통치하는 양상들을 보여주게 되었던 것이었다. 즉 채찍과 당근으로 다스리는 술법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러한 인간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한 민족을 택하여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들로 인간의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한 백성을 삼으셨던 것이다.
그 백성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며, 나중에는 이스라엘이라 칭함을 받은 야곱의 백성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유대인이라는, 즉 야곱의 열둘 자식 중에 유다의 후손들로써 유다민족, 또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스라엘 민족, 또는 유다민족은 스스로 선민이라 자칭하면서 선민사상에 빠져서 인류에 우월의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게 선민사상에 빠진 교만한 유대민족에 대한 적대감이나 증오감이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면서 멸종, 말살하고자 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고 했었던 것이다. 여전히 그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동에서는 끝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거룩한 백성과 선민사상의 차이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의 후손들이 하늘에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할 것을 약속한 하나님의 뜻과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은 노아홍수 이후에 인간의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다시는 물로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의 깊은 뜻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진리의 통로로써, 즉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나타내는 목적으로써, 또는 구원의 통로로써 제사장의 나라로 유대민족을 세웠다는 것을,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인간세상으로 알게,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즉 유대민족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세상을 다스리고 계신지를 깨닫게 하심과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대민족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민사상’으로 인간세상을 업신여기고, 증오를 일으키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었다. 오늘날에 기독교인들이 세상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처럼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 구원받았다는 의인행세, 그리고 세상사람들을 죄인취급 하는 그런 태도를 세상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예언자를 불러내어 끝없이 유대민족에게 깨닫도록 하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 믿음의 후손들은 유대민족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아니........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모세에게도, 다윗에게도, 그 외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들어 쓰시면서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인간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을 반드시 이루심을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 뜻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돼라.」(베드로전서 1장 15절)
그리고 예수님도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첫 문구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마태 6:9)
여기서 거룩함이란 인간 사상에서는 뛰어난 존재나 가까이할 수 없는 위엄이나 위품을 의미하려고 하지만, 존귀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높이고자 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라 하심에서도 이미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피력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지 그분이 거룩하다 하심은 흠이 없고 온전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으로써 그분이 태초부터 약속하신 것을 하나도 어긋남 없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뜻으로써 ‘거룩하시다’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도 그분이 거룩하심 같이 너희도 거룩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으로써, 조금도 의심 없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을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라 하심에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이루심이라는 것과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게 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의미하신다는 뜻으로 ‘거룩한 백성’이라 부르신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어둠의 세상에 빛(복음)으로써,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반드시 이루심으로써, 거룩한 백성을 세우셨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사실화 하였으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로 그 언약, 약속을 이루셨음을 확증케 하셨기에, 예수님은 믿는 그들에게 이렇게 고백하라고 기도를 가르쳤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을 고백하며 확실한 믿음, 즉 거룩한 믿음을 가리라고 베드로는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