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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Mar 26. 2024

인문학적 상상력 - 사기당할 위험 hedge

오태민 작가

오태민 작가가 제목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라 썼지만, 핵심은 이 사회가 어떻게 죄수의 딜레마를 이겨내고 신뢰를 형성했는가입니다. 책은 큰 틀에서 통시적으로 전개되고 사기 공갈 얘기는 저신뢰사회/고신뢰사회로 언급되는 근현대 대목에 이르러서야 나옵니다. 제가 쓰는 후기가 사실 책의 큰 줄기를 아우르지는 못하고 근현대 위주로 다룹니다.


원시인류는 척박한 환경에서 동족도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식인종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같은 식인종이어도 다수가 소수보다 생존에 유리하니 가급적 무리를 지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무리 구성원끼리 서로 잡아먹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므로 구성원끼리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하여 이러한 무리가 곧 '국가'의 원류요 이러한 약속이 곧 '법'의 원류가 되었다는 게 책의 해석입니다.


한편 윤리의 원류가 '왕따'라는 주장도 인상깊습니다. 현대인이라면 왕따는 윤리와 대척점에 있지 않느냐 하고 갸우뚱할 법 합니다. 그러나 왕따는 원시 집단에서 조직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딜레마를 이겨내게 하는 사적 제재로, 사실 현대 사회의 윤리 역시 광의의 사적 제재를 동반함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타당한 얘기로 보입니다. 다만 수렵채집인 시절부터 이어진 인간의 특성이 현대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처럼, 왕따 역시 현대에선 문제가 많은 수단입니다.

오태민 <인문학적 상상력>


그런데 그런 무리(부족)가 흩어져서 경쟁하고 있으면 결국 무한투쟁으로 이어지는 한편, 각 무리 내 모든 구성원이 보스가 되고 싶어하면 내부투쟁의 극한으로 갑니다. 그래서 인류는 더욱 커다란 무리-즉 국가의 형성 그리고 '적당한 내부투쟁을 통해 강한 지도자를 추대'하는 구조로 귀결합니다. 일례로 삼국지연의의 유비는 잡일하는 한량으로 묘사되었으나, 후한 말 치안이 악화해 좀도둑이 들끓는 지방에서 일대를 평정하는 '대도'가 되려는 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어보니 공권력과 깡패는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말이 마냥 쿨병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사적 지배를 하는 깡패가 존재하는 무정부가 디폴트이고, 국가라는 크고 관대한 깡패가 나타나서 그들이 숨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권력이 폭력을 독점하고 구성원 간 최소한의 정합적인 규칙을 정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큰 걱정 없이 삽니다. 저자는 이러한 플로우 속에서 인류의 본성에 맞는 체제가 독재 아니냐,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게 신기하다는 논조를 은근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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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최소한의 모델만 가지고는 개별 구성원의 일탈과 협잡과 카르텔 형성을 적절히 억누른 현실 사회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가져온 개념이 '우직한 바보'입니다. 책에서는 '소금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절대다수가 협잡질을 할 마음을 품은 pool에서 만약 소수의 인원만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대쪽이라면, 대쪽과 엮이는 협잡꾼은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pool의 steady state는 모두가 협잡을 할 엄두도 못내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자정을 통해 비로소 신뢰사회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상점에 가서 물건을 받기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현금을 먼저 건네지만, 현대의 저신뢰사회에서는 아직도 상인들이 무장을 하거나 방비를 하며 장사합니다.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회에선 절대로 고도화할 수 없는 신산업들이 고신뢰사회에선 발전합니다. 그러니 대쪽들이 소금입니다. 사기 공갈도 책에서 다뤄지는데,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 저런 메커니즘으로 억제됩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태어날 때부터 치안 선진국인 사람,그중에서도 특히 모범생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정의/도덕/신뢰 이런 게 절대불변의 무언가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몇 가지 강제력 등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평화인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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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이제부터 다루려는 '사기'에 대한 스탠스는 보통 두 가지로 갈립니다. 일단 한쪽에서는 사기를 당하는 순간 "이런 어수룩한 속임수에 당하다니, 비판적 사고가 안되는 어리석은 놈" 하며 지성인으로서의 순결이라도 잃었다는 양 허영을 떠는 부류가 있습니다. 반대쪽에는 "우리 모두는 잠재적 사기 피해자이다. 누구는 절대 당할 리 없고 그런 거 없다." 하며 밑도끝도없는 현자 코스프레가 있습니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재화의 값이 유동적인 것처럼, 사기 위험 역시 0으로 완전히 수렴할 수 없고 유동적이며 일상에서 크고작은 사기 피해 hedge를 합니다. 어느 사이트나 앱 가입할 때 개인정보 뭘 가져가는지 대강 후루룩 넘기거나, 거래를 '동시에' 하지 않고 한쪽이 뭘 먼저 전달하거나, 계약서를 몇시간동안 탐독하지 않고 대충 읽고 서명하거나, 요컨대 인지비용과 시간 등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당한 대비에 그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사는 게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요인에는 상대 거래자의 운신의 한계, 사기 이득 대비 과도한 비용 등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거래에선 굳이 사기를 칠 유인도 방비할 유인도 낮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일어나지, 사리분별 능력으로 갈리는 부분은 은근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기를 안 당하기 위해 정신을 단디 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기당할 위험을 적당한 상한선 아래로 묶어둔다는 어프로치로 가야 맞다고 봅니다. risk avoidance가 아니라 risk management를 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애초에 절대적인 위험회피는 불가능하거니와 그렇게까지 할 효용이 낮기 때문에 정상적인 투자자들이 위험'관리'를 하는 것처럼, 사기 역시 그러한 범주에 들어갑니다. 또한 위험 관리 마인드로 가야 가끔씩 일상적이지 않은 거액의 거래를 할 때에도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하는가 하는 판단이 잘 서리라 봅니다.


* 투자에서 hedge의 본뜻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분산투자입니다. 여기서는 작은 위험은 적당한 비용으로 틀어막고 위험이 큰 거래는 우량한 거래상대와만 한다 정도로 보면 대강 의미가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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