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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Dec 10. 2023

나의 후쿠오카 성인식

홀로 해외여행을 떠난 첫날

외래가 끝나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당직표를 보다가, '어, 나 추석 때 당직 아니잖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드는 생각: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

난 항상 추석 때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조상덕 본 사람들은 다 해외여행 간다는데, 맨날 나는 전만 부치고... 이번에는 제사도 지내지 않기로 했으니... 나라고 못 갈 게 뭔가? 싶어서 비행기표를 찾아봤다. 짧은 여행이니, 일본이나 갈까... 여름휴가 때 도쿄 간 거 재밌었는데... 그런데 추석 때 해외여행 가는 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더라. 아니 도쿄 가는데 120만 원? 심지어 오사카행은 표도 없었다. 어찌어찌 적당한 가격의 후쿠오카 표를 찾아서 바로 구입했다.

그때 친구에게 '나 추석 때 후쿠오카 가려고. 표도 끊었어.'라고 하니 반응이 '나도 갈래!'였다. 물론 그때는 같이 가도 좋고, 혼자 가도 좋다는 생각이었지만, 내심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서, 나중에 친구가 그 표를 사려고 들어갔을 때 이미 품절되어 버렸다는 얘기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결정됐다. 내 첫 혼자 여행은 2023년 추석으로! 뭐든 혼자 결정할 때 망설이고, 마음속 깊이는 홀로서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홀로 해외여행은 어쩌면 내 '성인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말을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걱정하실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 해외여행을 간다는 걸 알면 쫓아와서라도 말릴 것이 분명해서 동기들과 국내여행을 가게 됐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안전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가족 중 오빠에게는 일본을 간다고 말했다. 면세점에서 사케를 사 오는 계약조건으로 입막음했다...


그리고 전날 나는 당직이었고, 사실 전날 밤까지 환전도 로밍도 아무것도 안 해놓은 상태. 숙소도 지인이 자주 묵는다는 곳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지성 예약해 두었었고.. 새벽에 당직콜이 울려서 응급환자도 보고 왔었다... 그래서 거의 잠 못 잔 채로 일본으로 출발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야무지게 일본 간다고 속눈썹도 붙였었다..

책은 이것을 챙겼다. 많이 읽지는 못했다 사실. 히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너무 좋았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지만 햇볕은 있는 그런 날씨.


한국에서 전날 새벽 블로그에서 본 대로 PASMO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서 다운로드해두었다.

파스모 충전을 역에서 해야 하는데, 더듬더듬 일본어로 물어봤다. 사실 일본을 온 이유 중에 '일본어를 써보고 싶어서'도 있었다. 여름휴가 때도 도쿄를 갔었는데, 그때 더듬더듬 몇 년 전에 배웠던 내 일본어가 통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아직도 이게 기억이 나네? 싶기도 하고, 여행에 도움이 되어서 좋기도 하고. 서툰 일본어지만, 최대한 일본어로 주문하고 얘기해보고 싶었다.

캐리어를 든 어쩔 줄 모르는 여자애여서 불쌍해 보였는지, 다들 굉장히 친절하게 잘 도와주셨다...

Apple Wallet은 처음 써봤는데, 너무 편했다. 한국에도 얼른 교통카드를 이렇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도 핸드폰을 개찰구에서 갖다 대면 아직도 PASMO창이 열리는데, 그때마다 이 여행 생각이 나서 짧은 추억에 젖는다.


이 고즈넉한 거리 분위기가 좋았다. 밤에는 좀 무서웠지만.

그리고 이 건물이 너무 예뻐서 처음에는 카페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도서관이었다. 카페면 꼭 가보고 싶었는데, 대학교 도서관이어서 못 들어간다 생각하니 좀 아쉬웠다. 저런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은 참 복이 많다고 생각했다.

캠퍼스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대체로 이런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숙소가 역에서 너무 멀었다... 무지성으로 예약한 내 잘못이지만

그리고 또 너무 넓었다... 혼자 쓰기에는 정말 하루종일 굴러다녀도 남을 사이즈의 숙소.

거의 집이었다. 세탁기도 있고, 전자레인지도 있고, 등등...

안쪽에 정말 집처럼 소파도 있고 엄청 넓다. 레지던스라는데 진짜 살림 차리고 살아도 될 것 같았다. 친구에게는 혹시나 일본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면 여기서 살림을 차리면 된다고 농담을 했었다.


첫끼는 라멘. 그냥 동네 가게에서 시켰는데, 쏘쏘..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스폿에 갔는데, 사실 난 맥주를 먹고 싶었으나, 분위기가 혼자서 먹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냥 구경만 하고 왔다. 그래도 저 강가가 정말 예뻤어서 후회는 없다.

밤에 무섭다고 했죠?

그리고 일본여행의 국룰 편의점 털기!

난 항상 일본 올 때마다 느끼는 게, 하몽이 너무 저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몽, 살라미가 와인과 먹는 고오급 음식이 되어서 생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경제적으로 부담인데, 일본에 살았으면 매일 먹었을 것 같다.

그리고 치타라. 한국에서 좋아해서 자주 먹었으나 역시나 비싸서 요새 먹지 못했던...

그렇게 생맥을 먹고싶었지만 생맥을 먹기에는 너무 소심했던 나는 편의점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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