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제 학원비 내는 날이었지?」

불완전함의 빛

by 별마음 유정민

하고 싶은 일을 좇는다.
해야 하는 일도 해낸다.

그런데 이상하게, 해야 하는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KSC 실기시험 탈락 소식을 들은 어제 아침,
아이 학원비 결제일이라는 알림 문자를 받았다.

아, 맞다. 어제 학원비 내는 날이었지.

그렇게 중요한 일인데 또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ADHD 특유의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패턴"을 오래도록 품고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할 때는 시간 감각도, 우선순위도 희미해진다.

세상은 직선으로 걷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나는 늘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
남들 눈에는 멀고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겠지만, 내 안의 지도는 그렇게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다.


결국 급하게 남편이 학원비를 결제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은 자책하는 마음으로 털어놓았다.

"나 시험 떨어졌어. 70점 합격인데 66.25야."


남편은 담담하게 답했다.
"70점으로 붙어도 기분 별로였을걸? 떨어져서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어."
"재시험 비용 30만 원이 아깝긴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벌고 또 보면 되지 뭐."


정말이지, 나와는 너무 다른 리듬이다.
나는 자꾸 결과를 붙잡고 부족함을 세고 불안을 키운다.
가족들은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가볍게 웃으며 말해준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그들의 마음과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도 같은 내 마음 사이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어제 밤 학원갔다 늦게 들어온 딸에게도 이야기했다.
"엄마, 이번에 시험 떨어졌어."
딸은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떨어질 때도 됐지 뭐. 엄마 그동안 계속 붙었잖아. 가끔 떨어질 때도 있어야지."

아이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툭툭 털어주듯 받아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게 이렇게나 큰 위로가 될 줄이야.

별빛처럼 쏟아지는 순간들 사이로 가장 빛나는 건 바로 이 사랑의 언어였다.


나는 ADHD 특성상 실패나 실수를 유난히 크게 느끼고 조금의 부족함에도 과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가족들은 "실패는 실패 그 자체일 뿐"이라고 가르쳐준다.
"그걸로 네가 작아지는 건 아니야"라고 말해준다.


이번 탈락은 어쩌면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완벽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더 온전한 나를 배운다.

겸손하게 다시 시작하는 법을 사랑받으면서도 넘어지는 법을.

매일 밤 내 머릿속에서는 작은 우주가 펼쳐진다.

별들처럼 흩어진 생각들이 춤을 추고 그 너머로 새벽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일어나 걷는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를

여전히 어지럽게 오가면서도 나는 살아간다.


빛나지는 않아도 좋다.

어지럽지만 그 어지러움 속에서도 분명히 나는 나만의 빛을 품고 있다.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이면서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중이다.

내 삶의 모든 조각들이 모여 결국에는 하나의 별이 될 테니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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