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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잉맘 Aug 06. 2021

불안의 엄마들

내 엄마표 영어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엄마표 영어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늘 불안하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영어가 된다는 건가, 영어 영상물만 보다가 영상 중독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영어를 못하는 엄마인데 엄마표 영어가 가능하긴 한 건가, 하루에도 수십 번 고, 스톱을 저울질한다. 잠자리 독서 시간에 도망 다니는 아들과 씨름하게 되는 날이면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아?'라는 의심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 역시 이렇게 끊임없이 걱정하는 엄마 중 한 명이었다. 엄마표 영어를 막 시작했을 때, 수많은 전집을 비교하며 각 출판사 영업사원들과 미팅(?) 끝에 퇴직금을 올인해서 수백만 원짜리 영어 전집을 들였다. 한 때는 아이에게 영어로 말해줄 수 있도록 생활 영어 표현을 익힐 수 있는 1:1 영어회화 선생님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른바 '엄가다'를 자처하며 저주받은 손재주로 각종 엄마표 교구를 만들겠다며 시름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새벽까지 블로그나 카페를 뒤지는 건 물론이었다. (직접 만든 교구에 아이가 반응해주지 않을 때면 좌절하고 분노하며 쌩쑈도 많이 했다. 아들, 미안...) 하지만 이상하게 그럴수록 내 안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정말 엄마표 영어라서 불안한 걸까?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내 아이가 숙제는 잘하는지, 진도는 잘 나가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리딩 레벨이 오르고 있기는 한 건지, 차라리 이 돈을 모아 조기유학을 보내는 게 더 나은지 고민한다. 아이를 영어유치원이나 학원 등의 기관에 맡기지 않고, 엄마표 영어도 하지 않는 엄마들의 불안은 더하다. 열심히 하는 다른 엄마에게 '아직 한글도 못 뗀 애가 영어는 무슨 영어' 하거나, '엄마가 영어를 잘해서 좋겠다'면서 애써 호탕한 척 굴 어보지만 결국 초등학교 입학 전 급하게 학습지를 시작하거나, 영어학원을 수소문한다.


결국 우리 모두 두렵다. 그리고 불안하다. 부모의 영어 로드맵에 따라 아이의 평생 영어 실력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거다.




내 경험으로만 보아도 부모의 로드맵이 아이의 평생 영어 실력을 결정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다. (로드맵 따위는 개나 준 방치형 육아로 자랐지만, 나는 늘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 생각에 유아기의 영어는 단지 씨를 뿌려주는 단계일 뿐이다. 수확을 목표에 둔다면 햇빛 좋고 바람 잘 부는 땅에 좋은 씨앗을 뿌리려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언어를 배우는 것을 ‘즐거움’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것. 즉, 좋은 영어 씨앗을 좋은 환경에 뿌려주는 것. 언어 공부의 치열한 부분은 골라내고 재미와 즐거움으로 실력을 키우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엄마표 영어의 진짜 목표다.


내가 3년 동안 엄마표 영어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내가 언어 공부의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었다.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내 인생 전반의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성인기의 언어 습득들 위해서는 매우 고독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길을 어쩌면 평생 걸어야만 한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영어 잘한다 소리 들으면서 컸지만, 외고에 진학하고 나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릴 적에 해외에 살다왔다는 친구들은 이길 수 없었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도 살기 위해 영어공부에 매진했지만, 다개국어 환경에서 자라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유럽 친구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아이에게 언어만큼은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도록 해주자고. 어릴 때 시작할수록 고통스럽게 ‘학습’하기보다는 즐겁게 ‘습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언어를 배우는 일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거창한 신념이나 확신이 있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엄마일 것 같지만, 정작 현실은 이런 나도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불안에 어쩔 줄 몰라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이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거나, 어느 날 갑자기 구구단을 영어로 외우는 기적 같은 아웃풋을 보여주기 전, 길고 긴 인풋의 시간을 지나올 무렵, 불안감은 매일 나를 찾아오단골손님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표 영어로 아이를 키운 선배맘들의 후기를 찾아다니고, 엄마표 영어 관련 도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해답을 구하기도 했다. 한 번은 다섯 살짜리 아이를 위한 유아 원어민 회화 클래스를 알아본 적도 있다. '엄마표 영어,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름대로 확신이 있는 엄마였지만, 불안한 건 남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냥 엄마라서 그런 거였다


첫 아이 임신 초기엔 입덧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었다. 입덧이 심할 때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걱정했고, 입덧이 줄자 아이가 괜찮은지 걱정이 됐다. 출산 후엔 신생아를 돌보느라 잠을 못 자 정신없는 와중에도 맘카페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그 시기의 수유 텀은 몇 시간이 적당하네, 통잠을 자네마네 하는 류의 글들을 빨개진 눈으로 정독했. 행여나 아이가 열이라도 나는 날이면 밤새도록 보초를 서며 '깨워서 약을 먹일까요, 그냥 재울까요'같은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행여나 나의 잘못된 판단이 아이에게 해가 될까  웠고, 그래서 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불안은 내 아이를 사랑하는 초보 엄마로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자녀문제에 있어서 어차피 해도 불안하고 안 해도 불안하다면 그냥 안 하겠어!라고 할 수 있는 통 큰 엄마들이 얼마나 있을까? (설사 그런 배짱 있는 엄마라고 해도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한 번 흔들리고, 중학교 입학하면서 두 번 흔들린다 했거늘.) 내가 불안한 건 나를 지탱해줄 사교육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다는 나의 바람과 내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나의 불안과 싸며 엄마표 영어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엄마라서 불안하지만,

엄마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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