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뛰어들면 쓰지만 달기도 하지.
"우리 결혼할래? 결혼하면 우리 엄마는 시집살이시킬 분이 아니라서 시집살이할 일 없을 거야. 우리 집은 제사도 안 지내. 난 계란프라이만 있어도 밥 잘 먹어. 난 지금 ○○만원 버는데 수당, 보너스까지 합치면 이 정도는 된다고,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해. 돈 관리는 당신이 하고.. 난 그런 거 잘 못 하거든. 난 직장 지역을 옮길 수도 있어. 여긴 너무 머니깐 내가 그쪽으로 가서 근무를 할까 하는데 어때?"
연애시절, 남편이 내게 결혼을 설득하며 했던 말은 현실적이지만 달콤했다. 이런 말로 나를 설득하려 하다니 대단하고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한다면 평탄한 신혼을 누리게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웬걸, 관문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프러포즈에 나왔던 말 중에 지켜진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어머님은 시집살이시킬 분이 아니었다. 다만 내게 전화 연락을 유독 강조하셨다. 통화하는 것이 한때는 즐거웠다. 하지만 주로 남편에 관한 것만 질문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실 뿐, 남의 어머니와 대화하며 한 남자를 챙기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운동을 시키라며 닦달하셨다. 그리고 아침밥을 차려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가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잘 타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가 옆에서 잘 타일러서 하게 해야만 한다고 하셨다. 아침잠이 많은 그는 "아침밥 먹을래?" 물어봐도 싫다고 거절했었다. 그렇게 전했는데도 아침밥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셨다. 그 뒤로 나는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됐다. 계란프라이만 있어도 밥 잘 먹는다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은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연애할 때 내가 했던 요리를 맛보고 '결혼하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을 했더란다. 남편도 어찌 보면 이상과 현실이 달랐을 것이다. 난 할 줄 아는 몇 가지만 잘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직장 지역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역을 옮기긴 했지만 출장이 잦아졌다. 그래서 함께 하기 위해 외국에 같이 나가 거주해야 하기도 했다. 돈 관리는 어떤가? 그런 거 잘 못 해서 내게 맡긴다더니 결혼한 지 1년이 훨씬 넘어가도록 남편은 월급 통장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돈으로 알아서 생활했다. 남편이 생활비로 사용하는 지출은 배달음식뿐이었고 그 외에는 모두 홀로 탕진하는 듯했다.
달콤한 신혼은 허상에 불과했다. 기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문제없다. 난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말과 실제가 다르더라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 음식에 진심인 것은 수용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매일 색다르게 차려서 먹는다는 것은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무병장수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좋다. 애초에 남편에게 계란프라이만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어도 계란프라이만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챙겨주는 것을 좋아해서 연애할 땐 직접 약재를 다려 쌍화차를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맛있다는 말과 사약을 마시는 것 같은 표정이 매치가 되지 않아서 그 후로 안 해줬지만 말이다. 시어머님과의 통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면서 타협이 가능했다. 그리고 시어머님과 나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살아보니 남편은 어머님께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남편의 아버지는 젊어서 별세하셨고 어머님은 홀로 일하며 아들을 키웠다. 당연히 직접 챙겨주는 것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일부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엄마와 속 깊은 대화를 할 일이 없어서 어색했고, 어머님 또한 아들에게 직접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내 아들이어도 불편했을 수도 있다. 남편과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니 여자로서 시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 뒤로는 내가 먼저 남편의 소식을 전하고 남편에게는 어머님께 안부전화 드리는 것을 주기적으로 권유했다. 출장이 잦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 관리에 있어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의 소비는 낭비벽이 넘쳐흘렀고 저축은 아예 할지 몰랐다.
벌이가 수천단위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버는 것에 비해 쓸모없는 지출의 규모가 작게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신혼부부였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면 각자 벌어 각자 관리하는 것이 심플하고 좋겠지만 실제로 많은 부부들이 경제권을 누가 갖는지 또는 경제적 이유로 불화를 겪는다. 얼마 전 신혼부부인 친구에게 경제권을 이유로 불화를 겪고 있다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조금 섬세하게 풀어갈 필요성이 있다. 결혼하고 경제권을 바로 넘긴다는 것은 갑갑한 느낌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아무리 너와 나의 미래를 위해 좋은 취지의 이유라고 해도 그렇다. 모든 것을 오픈하고 넘긴다는 것은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도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타당해 보이는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타당하다고 여기는 부분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무조건 닦달하기보단 스스로 충분히 느끼고 함께 길을 걸어 나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처음부터 경제권을 완전히 가져와서 족쇄처럼 만들어두기보단 상대를 믿고 얼마든지 유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는 것도 좋다. 여기서 단점을 찾아 비난하기보단 장점을 찾고 칭찬하며 보완점을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경제권을 완전히 가져왔다면 얼마나 잘 꾸려나가는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상대도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마음이 급하면 당장 결과를 바라게 돼서 서로 타협해 가기도 전에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천천히 풀어나가다 보면 마음이 잘 맞는 순간이 분명 온다. 시행착오를 겪느라 가정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지금 당장 경제권이나 경제적 이유로 불화를 겪고 있고, 이혼 생각이 갈팡질팡 나더라도 세월이 흐르고 보면 "그땐 그랬지."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사람을 만나서 불화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결혼을 해서 풀어나가야 할 관문들을 거쳐나가고 있을 뿐이다.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과정이 빠지게 돼서 서로 이해와 배려를 하게 되는 순간들을 이만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이 주는 미션들을 풀어나간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상당한 깨달음을 주더라. 그것이 아마 결혼을 함으로써 얻는 가치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의 당신과 내가 더 가깝다고 느끼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함께 길을 걸어 나간다는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앞으로도 순탄하지 않은 순간들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행복은 항상 과정 속에서 얻게 됐다. 쓰지만 달기도 하다. 그것이 끝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닌 항상 다시 마주 보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