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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제 Mar 30. 2023

삶에서 의미 있는 것에 대하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난 이대로가 좋아. 낡았지만 매력이 있지.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독특한 영화 한 편을 보게 됐다. 흔히 볼 수 없는 영상미가 살아있어서 특색 있기도 했고, 등장인물들이 마치 3자의 입장에서 떠올려보는 단순한 모습으로 비치도록 스토리가 진행되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통의 여러 영화들을 보면 인물의 감정선이 돋보이기 마련인데 실제로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를 어느 누군가에게 듣고 있는 착각이 들만큼, 실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의 욕망과 순수함에 대해서도 단순하게 표현을 해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실제로는 참혹하지만 동화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2014년 개봉했으며, 2018년도에 다시 재개봉되기도 했다. 청소년 관람불가지만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이 영화 자체가 그렇게 표현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달려가며 보게 되는 영화이다. 이야기가 멈춤 없이 계속 진행되니까.





간단한 줄거리

1927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 D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무슈 구스타브!

구스타브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제로와 함께 좌충우돌 여러 상황을 겪게 된다.



기억에 남는 대사

난 이대로가 좋아. 낡았지만 매력이 있지.

무례함은 그저 두려움의 표출입니다. 원하는 걸 못 가질까 봐..

아무리 못난 사람도 사랑받으면 꽃봉오리처럼 마음이 활짝 열리죠.

산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눈 한번 깜박이면 저 세상이고 이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리지

착하게 살수록 빨리 죽고.

봤지?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이 잔혹한 세상에도 아직 희망이 존재해.

이 소박하고 겸손하고 보잘것없는... 염병, 관두자.

엄청난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 인간의 욕심은 독처럼 퍼져 나간다는 걸.

우리 둘 다 무일푼이었지만 그깟 돈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

이 호텔은 아가사를 위한 걸세. 우린 여기서 행복했네. 잠깐 동안은..

솔직히 내 생각은 구스타브 씨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무슈 구스타브에게서 인간의 여러 면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욕망에 대해서는 여러 번 비쳤다. 단골 여손님인 백작부인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에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장례식을 찾아가려고 분주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이면에는 이런 마음도 있었다. '내게 재산을 몇 푼 남겼을지도 몰라.' 영화는 이런 모습들을 단순하게 지나치듯 비춰준다. 그는 기차를 타고 가며 이런 말을 한다. "잠자리에선 화끈한 여자였어. 더 늙은 여자랑도 해봤는 걸. 젊을 땐 살코기만 찾지만 나이 들면 비계 덩어리도 마다않지. 난 비계가 더 좋더라고. 깊고 진한 맛이 느껴진달까." 이 대사에서 인간은 나이 들어가면서 순수함을 잃고 욕망에 점점 더 사로잡힌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그는 합리적인 인생을 살았다.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평범한 인간의 속내를 살짝씩 비춰주기에 그의 모습들이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끔은 선하고 순한 모습이 비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지위가 지켜질 때 나오는 모습이기도 했다. (제로를 내 허락 없이 누가 고용시켰는지에 대해 심기 불편해하다가, "수습기간인데 최종 결정은 구스타브 씨가 하셔야죠!"라는 말을 듣고 흡족해한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확인될 때 안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 많고 돈 많은 여성들은 그에게 높은 지위의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는 재산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로비 보이에서부터 시작해서 달려왔지만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그도 그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지위와 재산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가 제로를 지켜내려고 했던 이유는 자기 자신과 같은 모습에 동정심이 발휘돼서 일까? 아니면 선한 마음일까? 그가 동정심을 느꼈을지라도 그건 자기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감싸 안아주려는 의도가 담겼을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눈 한번 깜박이면 저 세상이고 이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리지

착하게 살수록 빨리 죽고.

그는 중년 남성의 호텔 지배인으로써.. 돈 많고 늙고 불안정하고 외로운 여성을 통해 재산을 거머쥐는 방법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살게 된 자신의 삶을 나름 합리적이라며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위로했을지도.. 그가 백작부인의 집에서 요한네스 반 호이틀의 작품이라는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을 갖고 나올 때, 대신 걸어둔 그림은 욕망에 사로잡힌 그의 타락한 마음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게 비록 영화를 보면서는 잠시 헛헛하게 웃으면서 지나치는 장면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그의 생각 나름대로 자신만의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살아왔겠지만, 그건 합리적이 아닌 합리화였다. 

솔직해 내 생각은 구스타브 씨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제로는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무일푼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일하게 된 청년이다. 재산 제로, 가족 제로, 학벌 제로, 그는 가진 것이 모두 제로이다. 이름도 제로다. 이건 우연이 아니겠지? 영화 장르가 미스터리, 모험인데 약간 코믹한 부분도 담고 있다. 그는 무슈 구스타브 밑에서 일하며 그의 부하직원으로서 충성을 다한다. 무슈 구스타브는 이미 욕망의 길로 타락했지만, 제로는 순수와 욕망의 두 갈래 길을 몸소 바라보며 겪는 상태인데 여기서 때 묻지 않은 순수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은 아가사이다. 아가사는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에게 왜 얼굴 흉터가 굳이 필요할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끝내 내 결론은, 제로가 사랑에 빠진 이유가 정말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둘의 사랑이 순수하기 때문에 커다란 흉터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둘 다 무일푼이었지만 그깟 돈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의 휘황찬란한 삶 속에서 아가사와 때 묻지 않은 사랑을 나눴지만, 아가사와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 역시 2년 뒤, 프로이센 독감으로 허망하게 죽게 된다. 백작부인의 죽음, 무슈 구스타브의 죽음, 아가사의 죽음 등등.. (이 외에도 죽는 인물이 여럿 나온다.)을 겪으며 돈이란 죽음 앞에서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막대한 재산을 거머쥐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투성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사들이고 그렇게 그의 순수하게 행복했던 순간을 간직한다. 이것이 이 호텔이 낡았지만 현재까지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가 살아온 삶 속에서 순수를 간직하고 있는 순간을 장소로 추억할 수 있게 된 그는 막대한 돈보다 더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이대로가 좋아. 낡았지만 매력이 있지.

이 호텔은 아가사를 위한 걸세. 우린 여기서 행복했네. 잠깐 동안은..



나는 이 영화를 2번 봤는데, 두 번 보니까 이해가 더 잘 되더라. 이 영화에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향수를 아무리 뿌려도 악취는 가려지지 않는다. 악취를 더 할 뿐!.. 살면서 고뇌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이 생기는데, 의미 있고 행복한 순간들로 채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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