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었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누구나 들으면 놀랄만한 일이었다. 100% 이혼사유였다. 신혼 초에 벌써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결혼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은 내가 아는 모두에게 비밀이었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다만 당사자인 남편과 대화를 할 뿐이었다. 이것마저도 수개월이 지나서야 사실 알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건네었었다. 그때는 이미 홀로 마음 고생하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게 된 후였다.
왜 알게 된 직후 바로 말을 하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사실이 아닌 현실 앞에서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앞섰다. 결혼초 그는 내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지 몇 개월이 지난 후쯤부터는 신경질적이었지만 모두 내 탓이라고 여겨지게 됐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정했던 모습과 신경질적으로 변한 모습 속에서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실을 시어머님께 털어놓았다. 그간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어머니에게 말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마 잘못을 축소시켜 조금은 포장해서 말을 했을 것이다. 나에게 걸려오는 잦은 시어머님의 전화 연락을 조금 줄여주고자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홀가분해지고 싶었을지도.
그 일로 나는 시어머님과 전화 연락을 다시 하게 됐었다. "어머님, 이런 일이 제게 생겨 어머님과 웃으면서 통화를 못 하겠더라고요. 이 일을 친구에게 말하기도, 저희 친정엄마에게 말하기도 좀 그랬어요. 그와 풀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거짓으로 자꾸 저를 속여서 속으로 삭히다가 이렇게 병이 와버렸네요." 하고 흐느끼며 말했다. 시어머님은 나에게 "잘했다. 다 누워서 침 뱉기야. 우리 아들 일로 무슨 일이 생기거든 모두 나에게 말하렴." 하며 답했다. 그리고 "나는 내 아들이어도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해. 무조건 아들 편이 아니야." 하셨다. 그때는 말할 대상이 생겨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폭풍이라고 여겨졌던 사건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수개월,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또다시 반복됐다. 이 일로 어머님께 힘겹게 털어놓으며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허망스러웠다.
"너한테 이런 소식 들으면 나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잠도 못 자고 힘들어 죽겠다."
죽고 싶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나는 "어머님, 이런 일로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결혼 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거죠.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테니 걱정 마세요."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말할 곳을 잃었다.
사실 죽고 싶은 것은 나였다. 나는 매일 '언제 죽어야 할까?' 생각하곤 했었다. 이런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이런 일은 흔하게 겪는 일이 아니었다. 당신 아들이 이렇게 사고 쳤다고 말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니,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니, 어쩌면 나보다 더 연약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후에 나로 인해 남편과 다툼이 생겼을 때, 남편은 나의 잘못을 모두 시어머님께 말했다. 시어머님은 한쪽의 편만 드는 것이 아닌, 양쪽의 말을 듣고 판단한다고 하셨지만 내게 전화는 하지 않으셨다. 그저 거짓이 조금 들어간 그의 과장된 말들에 자신의 아들을 위로하고 걱정하는 말들만 하셨다. 어머님에게 들은 말을 내게 그대로 전달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의아했다. 그가 사고 쳐서 힘들다며 털어놓는 나에게는 네가 이런 소식 들려주면 죽고 싶다고 했으면서 나의 잘못을 털어놓는 그에게는 "아이고, 우리 아들! 힘들겠다. 걱정이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하며 말했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시어머님은 그의 엄마다. 나의 엄마가 아니다. 내가 나의 엄마에게 그의 만행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쨌든 그는 나의 배우자이고, 그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의 엄마가 알게 되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편견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알게 모르게 그가 나의 친정이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니 말을 아꼈을 뿐이다. 나는 아마 그를 많이 사랑했나 보다. 그렇다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니겠지만, 나와 성격이 다를 뿐일 것이다. 그리고 선택하는 행동이 다를 뿐이다.
아마도 내가 나의 엄마에게 털어놨더라면 우리 엄마도 똑같이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운해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 일은 친정엄마에게 말하지 말고 모두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던 시어머님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결국 시어머님은 나의 엄마가 아닌 남의 엄마다. 자신의 아들을 남들에게 욕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그리 하라고 했을 뿐, 자신에게 털어놓으라는 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방송에서는 가끔 사이가 좋은 시어머님과 며느리의 사연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시어머님은 나의 엄마가 아닌 상대방의 엄마이며,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내 아들 걱정이 먼저인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겪는 풍파 속에서 홀로 삭히면 마음의 병이 오니,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한데 그것이 시어머님이 될 수는 없다. 사소로운 것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이혼 사유가 될만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돌아서면 남이기에 며느리 입장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친정을 불편해하게 될 그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홀로 삭혀서 병이 날 자기 자신을 위해 나의 엄마에게 털어놓으러 가면 된다. 그것이 이치에 맞다. "너에게 이런 소식 들으면 나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 하며 말하는 시어머님께는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아… 그러세요. 그럼 앞으로 어머님께는 말하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