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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진 Aug 04. 2021

성냥의 가벼움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 -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각색

 “들었어? 그 4번 출구에 있던 이씨 아재, 결국 죽었대.”

 “그 사람 참 괜찮았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구먼. 더워서 그런 겨?”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죽는데 그 이유가 중요한가. 근데 이렇게 더운 날인데 주변에 다 쓴 성냥개비들이 있었다네. 아재 표정도 편안했대.”


 무료 급식소 주변을 돌며 이야기를 듣던 나는 탄식했다. 또 늦었다. 죽음과 타 버린 성냥 세 개비. 사람과 장소, 사인은 다 달랐지만 내가 주목한 사건들에 이 두 가지는 항상 똑같았다. 일주일 전에 이 근방에서 노숙자 한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성냥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이 곳을 배회했다. 어제도 밤을 꼬박 새며 곳곳을 돌았지만 내가 없는 곳에서 일은 일어났다. 내 가방 속에는 감히 불을 붙일 수 없는 성냥 한 개비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만나야했다. 십 년 전 내 삶을 완전히 바꾸었던 그 소녀를.


 얼룩덜룩한 몸과 깨진 병 조각.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와 씻지 못해 나는 매쾌한 체취. 고함 소리와 코 고는 소리. 그리고 나를 안고 연신 사과하며 내게 닿는 눈물.

 십 년 전 내 세상은 이랬다.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나와 엄마에게 가하는 고함과 매질이 함께했다. 분명 처음에는 다정했던 사람이었다. 매일 나갔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집에만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조금씩 집에 초록색 병은 쌓였다. 보다 못 한 엄마는 아버지를 채근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밀쳤고 엄마는 손목에 타박상을 입었다.

 “내가 미안해. 정말...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다음날 아버지는 엄마에게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고, 엄마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넘어갔다. 하지만 엄마의 손에 붕대가 감긴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우리의 생활엔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래도 엄마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엄마 일 갔다 올게.”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엄마를 더 볼 수 없었다.


 그날은 눈이 내린 다음 날이었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매질은 평소와 달랐다. 정말 이러다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다해서 아버지를 밀치고 집을 뛰어 나갔다. 하지만 내가 달리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오랫동안 굶어 힘이 빠졌고 골목길에 앉아 엉엉 울다 쓰러졌다.


 “얘. 여기서 그렇게 자면 안 돼.”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희미했던 정신을 조금씩 차렸지만 눈을 완전히 뜰 순 없었다.

 “정신 차려봐. 이러면 큰일 나.”

 슬쩍 뜬 눈엔 망토를 두르고 있는 소녀가 비쳤다.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 소녀는 나를 부축해 앉혔다.

 “왜 여기에 그러고 있어?”

 “...”

 “말을 하기 힘들구나. 그래도 여기에 이렇게 있으면 안 돼. 이렇게 얇게 입고. 새벽이 되면 더 추워질 거야. 집에 들어가.”

 “... 집에 갈 수는 없어.”

 내 말을 듣고 그 소녀는 내 얼룩진 팔과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네게 이걸 줄게. 너를 도와줄 거야.”

 살짝 잡은 내 손에 들린 것은 성냥 세 개비였다.

 “이게 뭐야...?”

 뭔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왜 주었는지 알고 싶어서 물어봤다. 하지만 그 소녀는 없어졌다.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골목길엔 나뿐이었다. 잔잔한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이 기이한 현상에 나는 성냥을 꼭 쥐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깟 성냥으로 뭐 어쩌라고. 그런 생각으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기온은 점점 낮아졌고, 나는 너무 추웠다. 결국 성냥 하나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작은 성냥에 큰 불이 붙었다. 얼마나 컸냐면 그 속에 따뜻한 집이 다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따뜻한 난로 앞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갖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갑자기 두꺼운 솜털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은 못 먹을만큼 배가 불렀고 추위와 허기짐은 더 이상 나를 힘들게 만들지 못했다.

 그때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작은 바람에도 큰 불은 쉽게 꺼졌고 든든했던 나는 다시 날씨와 굶주림에 한 없이 작아졌다.


 손을 떨면서 다른 성냥 하나에 불을 붙였다. 그 촛불엔 엄마가 나왔다.

 “왜 여기에 이렇게 춥게 있어, 몸 얼음장인 것 봐. 엄마랑 따뜻한 거 먹으러 가자.”

 엄마는 불 속에서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나는 이렇게 추운데, 엄마는 왜 혼자 따뜻하게 그곳에 있어.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떠났어? 왜 다시 안 돌아와? 왜 나를 버렸어...?”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촛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이 불이 꺼질까봐, 엄마가 없어질까봐 무서워서 손을 거두었다.

 “엄마가 미안해. 곧 데리러 갈게. 네가 상처 받지 않도록 엄마가 알아볼게.”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흐르는 눈물을 따라 볼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눈물이 지나간 자국은 배로 차가웠다.

 “아냐 엄마. 그냥 여기 있어줘. 떠나지 말아줘.”

 성냥이 평생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냥은 너무 작았고, 엄마는 점점 흐릿해졌다. 줄어드는 불의 따뜻함을 느끼며 다음 성냥에 불을 붙이려고 할 때, 놀란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아줌마가 나를 안고 급하게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를 발견했던 아줌마는 병원에 나를 데려갔다. 경찰 몇 명이 왔지만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이 없자 곧 물어보기를 포기했다. 내 몸의 여러 상흔을 본 아줌마는 내 새로운 보호자가 되어준다고 약속해주셨고, 그 약속을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주셨다.


 “그 어둡고 조용한 골목에 순간적으로 빛이 반짝거리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그곳으로 갔지. 요즘 같은 날에 성냥을 들고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너를 본 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졌단다. 추운 날 바깥에서 움츠린 아이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가 뭐가 중요하니. 네가 중요하지.”


 언젠가 아줌마는 내게 말해줬다. 정신을 차린 뒤에 바로 성냥에 불을 붙여 엄마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성냥이기 때문에 차마 불을 붙일 수 없었다. 붙이면 정말 엄마를 더 이상 못 볼 것 같았다. 당시엔 그랬다. 조금 더 큰 뒤에 성냥에 대해 찾아봤다. 우연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도 목숨이 위험할 때 소녀를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촛불에서 본 것은 나와 달랐다. 성냥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지만, 성냥을 받은 살아있는 사람을 더 찾을 순 없었다.


 죽음과 성냥. 죽은 사람의 얼굴에 걸린 은은한 미소. 몇 년동안 관련된 일을 찾으며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생의 문턱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성냥이 보여주는 것은 내가 갈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외로운 인생의 마지막에 선사하는 따뜻한 위로.

 소녀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위로를 주는 너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냐고. 양말조차 없는 그 발은 누가 감싸주냐고. 네 덕에 따스함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젠 내가 네게 따스함을 주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줌마와 함께 살고 소녀의 흔적을 찾으면서 깨달았다. 마지막 남은 성냥에 불을 붙이면 더 이상 엄마가 나오지 않을 것을.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서로의 외로움을 감쌀 수 있는 세상. 그래서 마지막 불은 소녀와 아줌마를 비출 것이다. 하지만 불을 바라보는 나는 소녀에게 신발을 건넬 수 없다.


 급식소에서 얘기를 듣던 나는 소녀를 찾기를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소녀를 만날 방법을 찾았다. 마지막 성냥을 켤 때, 나도 나오면 된다. 소녀와 함께 나도 불에 나오면 그 속에서 소녀를 안아주고 대화할 수 있다. 마법의 성냥이나 죽음을 감지할 수 있는 감이 없어도 괜찮다. 외로움을 감싸는 방법은 손을 건네는 것. 내 마지막 성냥에 나오기 위해선 이것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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