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지혜 Jan 18. 2022

유리고양이를 위한 츄르 만들기 : 강박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지나가던 나그네들을 제 침대에 눕혀, 맞지 않으면 죽여버리는 극악한 도적 이야기야. 제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격하는 예시로 더러 쓰이는 이야기지. 유리고양이 이야기하다 말고 왜 갑자기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냐고? 내가 고양이에게 그 침대를 들이밀고 있었음을 깨우쳐서 하는 소리야.


  전에도 잠깐 언급했던 적 있어. 아침마다 고양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고. 고양이를 정시에 출근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고, 내 선에선 가장 부드러운 격려였지. 아침마다 도살장 끌려가는 표정인 고양이를 혼자 내보내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어떻게든 돕고 싶은 의지도 있고. 그래서 한 달가량을 매일 아침 함께 나섰던 것 같아. 덕분에 고양이는 매일 거의 같은 버스를 타고, 회사에 늦지 않을 수 있었지.

  그런데 잘 들여다봐봐. 과연 이게 부드러운 격려가 맞았을까? 아주 은은한 강요였던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은은하지도 않았을지 몰라. 물론 아침마다 함께 나서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향하는 짧은 거리나마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거든. 즐겁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었지. 문제는 그 다음이야. 

  회를 거듭할수록 내 안에 생각이 많아지는 거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리 유리고양이는 역시 혼자서 출근도 버거운 건가? 땡. 잘 생각해봐. 고양이가 같이 가달라고 했어? 지각 때문에 회사에서 버겁다고 했어? 아니야. 전혀 아니야.

  비록 택시를 탈 때가 잦고, 아침마다 고전한다고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의 길을 가. 그럼 매일 아침 8시쯤 집을 나서서 꼭 택시를 타고 8시 30분 전에 회사에 도착해야 하는 쪽은 누구였게? 나. 집사의 생각과 고집이었던 거라고!


  나는 출퇴근하던 시절에 딱 정시에 집을 나섰어. 회사에 8시 50분까지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최적의 루틴을 짰지. 매일 정확히 8시 13분에 집을 나섰어. 물론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 시간에 집을 나서. 미리 준비를 마친다 해도 절대 미리 나가지 않고, 꼭 그 시간에 늘 다니던 길로. 일정한 속도로 지하철 역에 도착하면 출근시간대 치고 가장 덜 붐비는 열차가 와서 서고, 나는 늘 그 자리에 올라타 출근을 하는 거지. 지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 위기야 몇 번 있었지만 위기로 그쳤지. 

  그런 내 기준에서 택시는 낭비였고, 나태의 산실이었어. 돈도 돈이지만, 행여 출근길이라 길이 막혀 늦으면 어떡해? 돈값도 못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면 어떡해? 내 불안이었던 거지. 내 불안, 내 강박. 막상 그래서 회사에 늦는다면 어떻게 될까? 뭘 어떻게 돼! 상사에게 혼은 좀 나겠지만 그대로 흘러가겠지. 

  나는 그런 내 기준에 고양이를 맞추려 했던 거야. 고양이도 나름 대로의 방식이 있고 임기응변할 능력이 충분한데, 내 기준에 이해가 안 되니 짜 맞추려 했어. 이걸 깨우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더라. 

  아침마다 함께 출근하던 것을 그만두었어. 늑장 부리는 고양이를 내버려 두기도 하고,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알아서 가도록 관심을 껐지. 무탈했어. 고양이는 좀 더 튼튼히 스스로의 길을 갔고,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어. 꼭 그 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침마다 나가는 거, 실은 쉽지 않았거든. 


  유리고양를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 잘 알아.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런 고양이의 힘을 집사가 우선 믿어주는 일인 것 같아. 집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뭐야? 내 도움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고양이? 아니잖아. 고양이도 충분히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개체란 걸 잊지 말자. 아픈 건 아픈 거고, 어른인 건 어른인 거니까.

  그리고 집사도 스스로의 강박이나 잣대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 내가 만든 기준에 고양이를 끼워 맞추고, 잘 되지 않으니 괴롭고. 자승자박이야. 결국 내가 나를 괴롭히는 꼴밖에 안 된다고. 내가 답답하고 속상한 건 순전히 내 기준일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고양이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단 말이야. 내가 유리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순수한 지지와 버팀목. 그거면 충분하다는 걸 꼭 상기하자.

  고양이 덕에 내가 더 덕을 많이 본다. 좋은 집사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인 것 같아.

매거진의 이전글 유리고양이를 위한 츄르 만들기 : 츠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