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방법
안녕! 고양이들, 집사들 모두 잘 있었어? 마지막 유리고양이 시리즈를 남긴 지 벌써 2년이 다 되었더라고. 근황을 남겨야겠다고 자주 생각했는데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 않았네. 어영부영 늦었지만 이제라도 근황을 남겨. 이 시리즈의 결말 내지는 근황을 궁금해할 많은 독자들을 위한 신년선물쯤으로 해둘까.
글이 뜸해졌다는 건 실은 긍정적인 뜻이야. 나의 유리고양이가 많이 괜찮아졌음을 의미하고, 덕분에 내 불안도 많이 나아졌기 때문에 글을 쓸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 애초에 토로할 데가 필요해서 글을 썼던 거니까.
1. 유리고양이 근황
고양이는 남겼던 글처럼 2022년 1월 1일부로 휴직에 들어갔어. 6개월 간 쉬기로 했고 어른들께도 알렸지.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지만 거주지역이 가까워서 어물쩍 넘어갈 수가 없었거든. 특히 시어머니가 크게 화를 내시며 답답해하셨지. 아들고양이가 이기적으로 군다고 말이야.
고양이는 참다못해 목소리를 냈고, 나도 함께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어. 주로 심리평가 결과를 설명드렸던 것 같아. 그게 이해가 빠르잖아. 수치로 명확히 나와 있고 하니까. 입원을 해야 할 정도라거나, 자살사고를 하고 있는 것, 직장보다 치료가 급선무라는 것 등을 말씀드렸지. 유리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살벌한 분위기의 대화였는데, 어른들 보시기엔 철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 '조금 힘들다고 멈출 것 같으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갈래?' 하는 식 있잖아. 6개월만 쉴 거라고 계획을 말씀드린 뒤에야 조금 진정하셨지.
살얼음 같은 자리가 끝나고 나니 시어머니는 내 등을 쓸어주며 말씀하셨어. "미안하다. 네가 고생이 많았겠다." 나는 시어머니를 꼭 안아드렸어. 괜찮을 거라고, 그래도 우리는 잘 지낸다고.
유리고양이는 6개월을 참 알차게 보냈어. 원하던 글을 쓰고, 게을러지지 않으려 노력했어. 그냥 '노는' 시간이 아니라 정말 '쉬는' 시간을 누리려 애썼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휴직을 결정할 때 집사와 약속했던 것을 꼬박꼬박 이행했어. 바로 상담치료야. 매 회기마다 적잖은 돈이 들고, 이미 약물치료를 위해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그 이상의 치료를 권했어.
상담센터는 집에서 가까운 게 좋을 것 같아서 집 근처의 한 곳을 골랐어. 동네 특성상 유아심리상담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고양이는 그곳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 딱 한 번 상담받아보고 다른 곳을 찾기로 했어. 상담은 마음 맞는 선생님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들어도 그 편이 낫겠다고 여겼지. 결국 심리검사를 진행했던 상담센터로 골랐어. 성인상담을 주로 하는 곳이라 고양이의 마음에 들었거든. 선생님 프로필을 보며 고양이에게 직접 선생님을 선택하게 하고, 날짜를 잡았지. 고양이는 가장 젊은 축의 선생님을 선택했어.
매주 1회 50분씩 상담을 했어. 초반엔 매번 같이 가서 고양이를 센터에 데려다주고 집사는 밖에서 기다렸지. 그러다 점점 고양이 스스로 혼자 알아서 잘 다니기 시작했어. 집사가 항상 따라가지 않아도 곧잘 하더라고. 기특했지.
상담은 회기당 약 9만 원 정도 단가였고 우리는 벌이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어. 휴직으로 고양이 직장에서 급여가 대폭 줄어서 나왔고(그것만도 얼마나 감사한지), 집사는 실업급여로 버티는 중이라 참 빠듯했거든. 그래도 상담에 드는 돈은 아깝지 않았어. 쉬어서 나아지는 건지, 상담해서 나아지는 건지는 몰라도 고양이의 하울링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거야!
상담은 매주 1회, 약 11개월 간 진행했어. 복직한 후에도 주말에 시간을 내어 상담은 한동안 꾸준히 이어갔고. 고양이가 어느 순간 그러더라. "'상담이 필요 없다'라고 여겼던 처음보다 '상담이 필요하다'라고 여기는 지금이 훨씬 건강해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라고 말야. 실제로 고양이는 집사가 닦달하지 않아도 주말에 스스로 짬을 내어 상담을 다녔어. 주말을 통째로 쉬지 못하고 스케줄 잡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제 발로 상담을 가다니, 용했지.
고양이가 복직할 쯤엔 집사도 꽤 긴장했어. 쉬는 동안 괜찮아졌던 게 단순히 휴식 덕분이었으면 어쩌나, 복직하는 순간 스트레스로 다시 예전처럼 괴로워하면 어쩌나. 아마 힘들어하던 고양이를 지켜보는 게 집사에게도 꽤 힘든 기억이었던 때문이겠지.
다행히 고양이는 전만큼 힘들어하지 않았어. 휴식과 노력이 빛을 발한 거야. 물론 여전히 예민하고 종종 힘들어했지만, 전처럼 괴로운 하울링은 하지 않더라고. 대단하지.
2. 집사 근황
집사는 최근 막막한 마음으로 온라인에 검색을 했어. '위로하는 방법' 웃기지만 정말 그렇게 검색해 봤어. 고양이가 또 힘들어하는 때가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는 게 나도 괴롭고, 그렇다고 혼자 꽁꽁 싸매고 있다가 다시 병날 까봐 두렵고. 그래서 내가 잘 받아 줘야 하는데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는 거야.
검색결과엔 빤한 답뿐이었어. '그냥 곁에 있어주면 된다.', '어쭙잖은 충고는 절대 하지 말라'.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치다 과거를 떠올렸지. 고양이가 힘들 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많이 괜찮아진 후에 고양이가 어떤 걸 고마워했는지.
나는 채근하지 않고 고양이 곁에 가만히 있어 주었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더라도 묵묵히 별로 심각하지 않게 여기려 노력하면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거야. 특별히 위로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게 포인트지 싶더라. 곁에 맴돌 듯,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 시키려 주변에 머물고, 짬을 봐서 "쓰다듬어도 될까?', "안아줄까?" 묻는 거지.
며칠 괴로워하던 고양이는 스스로 나아지더라. 놀랍게도 그래. 믿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더라고. 집사가 할 일은 매일 아침 꼬박꼬박 약을 잊지 않게 챙겨 먹이고, 내 조바심에 고양이를 몰아세우지 않는 것. 그거면 되더라고.
나는 자주 마음을 다잡아. '고양이가 힘듦을 토로하는 것은 나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면서.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도 적당히 요구하고, 고양이가 원하는 바도 적당히 수용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됐어.
좋은 결말이라 여겨지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는 많이 평온해졌거든.
사랑하는 고양이의 차도가 보이지 않아 캄캄한 집사들에게 부디 희망이 되었으면 해.
걱정 마, 다 괜찮아질 거야.
오해 없이 사랑하자. 그거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