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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Jul 26. 2022

맥주에 빠지고 골프장에 뛰어들다

포틀랜드 여행 2


해가 나의 얼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느낌에 눈을 떴다. 장거리 비행에 나의 뒷목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아 모처럼 늦잠을 잤다. 밤마다 나를 몇 번씩 깨우는 반려견 순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몇 달 만에 방해하는 순이 없이 잠을 잘 수 있음에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포틀랜드는 화장을 하지 않고 생얼굴로 다니는 사람의 얼굴처럼 자연을 닮은 피부를 그대로 보여주고, 눈가의 주름도 감추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친척처럼  나를 반기는 듯했다.  고층 빌딩위에 설치된 네온사인 같은  인위적인 화려함보다는 자연과 가까이 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네는  친근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곳이다.


매주 farmers market이 열리고, 텐트를 치고 지내는 노숙자들에게 관대한 이곳은 조용하지만 사람의 정이 오고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조용한 동네를 벗어나 시내로 나가자고 했다. 시내라고 해서 끝이 보이지 않은 높은 빌딩들이 그늘을 만들고, 세계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뉴욕 같은 거리는 아니지만 작은 카페들과 아담한 쇼핑몰이 있어 걸어 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다운 타운을 걷다 보니 군데군데 인도에 테이블들을 놔둔 레스토랑들이 있고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수제 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포틀랜드에는 수제 맥주집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 하나인 'Von Ebert Brewing'에 들어가서 바깥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다섯 가지 맛의 맥주를 샘플로 마셔보기로 했다. 그중 'perpetual shift'가 가장 편하게 나의 목을 넘어갔으며, 그다음에는 'larger'가 나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다. 과일향의 맛이 나는 맥주는 맥주에 향수를 탄듯한 느낌이 들어 나의 입에는 맞지 않았다.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와서 맥주를 마시는 옆 테이블의 일행은 개를 쓰다듬어 주는 행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바빴다.


신선한 맥주를 맛본 후 스텀프 타운 커피를 마시러 갔다. 포틀랜드에는 수제 맥주, 스텀프 타운 커피, 와인이 유명하다. 스텀프 타운 커피를 파는 카페에 걸어가는 동안의 햇빛은 먼지 하나 없는 공기를 그대로 통과하여 따갑게 내리쬐었지만 낮 기온은 24도라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선선했다.


스텀프 타운 커피는 포틀랜드에서 맛볼  있는 유명한 커피이다.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 나오는 포그씨 세계 일주를 하는 동안 방문한 나라에  들를 때마다  스탬프를 찍듯 나도 포틀랜드에서  가야  곳에 들러  스탬프를 찍는 기분으로 스텀프 타운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직전에 마신 맥주의 여운이 남아 있었던지 스텀프 타운 커피는 나에게 강렬하게 와닿진 않았다.  보스턴에 가면 하버드 대학을  방문하듯이 포틀랜드에선 스텀프 타운 커피를  마셔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맛을 느끼며 골프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뜨겁게 지는 해를 보면서 달려간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퍼블릭 골프장은 18홀이었으며, 한 사람당 24달러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만 원 정도이다. 나는 장롱 운전면허증처럼 2년째 연습장에서만 골프채를 휘두른 왕초보이다. 배우지 않으면 후회할까 봐 시작하게 된 골프는 좋아하지도 않고 재미를 느끼지도 못하고, 왜 치는지도 모르면서 연습하다 말다를 반복하는 답답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한국에선 초보자가 골프를 치러 갈려면 부담감으로 인한 멘탈 무장을 해야하고 모험이 뒤따른다고 했다. 날 아는 이 없는 미국에서 칠 기회가 왔다. 무조건 뛰어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동네 골프장을 덜컥 예약해놓고 이제라도 취소할까, 아니면 가서 그냥 걷다가 올까 마음속에서 요동을 치는데 딸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일단 갔다. 부담감이 컸던지 골프장을 보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달리 재밌게 치라고 말하는 친절한 접수 직원에게서 편안한  골프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카트를 사용하지 않고, 캐디 없이  두 사람 예약도 가능했던 그곳에서 인생 첫 라운드를 준비했다.


허술한 마음과 부족한 준비는 골프장에 도착하자마자 들통이 났다. 골프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used ball' 20개를 골프장에서 샀다. 그리고 첫 번째 홀에 가서 생전 처음 티오프를 위해  드라이버를 꺼냈는데 공을 올려놓고 치는 '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걸 어쩐다 낭패다라고 생각하며 잔디밭을 살펴봤다. 누군가가 남기고 간 두 개의 드라이버 티를 발견하고는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좋아했다.


우리가 순서를 양보한 앞의 팀은 부부와 아들, 백발의 할머니가 치고 있었다. 지도를 들고 있었지만 길을 모르는 우리로선 그 사람들이 가는 코스를 따라가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야에 그 사람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바짝 신경 써야 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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