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여행 2
오후 6시에 티오프를 한 골프장에서는 우리가 제일 마지막 팀이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없어 마음 편하게 연습하듯이 쳤다. 다만 앞 팀이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보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잔디밭을 밟으며 나무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골프장에서 우리의 실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친 공이 어딨는지 찾지 못해 땅에 떨어져 있는 다른 공을 내공이라 착각하기도 했으며 파 3인지 파 4인지를 생각하면서 치지도 않았다. 점수를 적으라고 준 펜과 용지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연필을 겨우 쥘 수 있는 어린아이에게 스케치북을 주면서 마음대로 그리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즐기리라 마음먹고 골프채를 색연필처럼 마음껏 휘둘렀다. 서로 못 치는 것에 웃음을 터뜨리고 왕초보인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공을 찾아다니는 우여곡절 끝에 인생 첫 라운드 6홀을 마쳤다. 우리 뒤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앞 팀은 저만치 멀리 가 있어 불안한 마음도 들었고, 체력 방전을 핑계로 첫라운드를 마치기로 했다. 골프장을 걸어 나오는데 80이 넘어 보이는 두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골프채를 휘두를 힘도 없어 보였지만 16홀인 걸 보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골프를 칠 수 있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첫날 18홀을 돌지 못한 이후 두 번을 더 도전한 끝에 우리는 겨우 9홀을 다 돌 수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더욱더 익숙해진 골프장 코스는 첫날만큼 두렵지 않았으며 얼굴도 약간 두꺼워져 못 쳐도 그러려니 하면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인홀을 돌았다. 인생 첫 나인홀 성공이었다. 18홀을 돌지는 못했지만 3시간 가까이 걸린 코스를 카트 없이, 캐디 없이 우리가 해낸 거라고 자축하며 기분 좋게 골프장을 나왔다.
미국에서는 골프가 한국만큼 다가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사는 동네 가까이 골프장이 있었으며 주말에 가족이 나들이하듯 즐길 수 있는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10대 청소년부터 80대로 보이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골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3대가 함께 느리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한 홀 한 홀 나아가며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가족 운동회에 온 것처럼 보기가 좋았다.
가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치려면 4인이어야 하고, 그린피와 캐디피, 그리고 그늘집이라는 곳에서 먹는 음식값도 만만찮다고 들었다. 회원제가 아니면 퍼블릭 골프장에는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간 포틀랜드 동네 안에 위치함 퍼블릭 골프장에서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골프를 쳤다. 어렵게만 느껴지고 같이 가는 동반자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섣불리 필드에 나갈 엄두를 못 낸 내가 골프장에 발을 디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두 사람이 골프장에 세 번 간 비용은 모두 200불 정도였으며 즐거움과 성취감, 숙제를 마친듯한 홀가분함을 느낀 것에 비하면 저렴한 비용이었다. 골프장에 가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해 신발과 옷을 준비해 가지 못한 탓에 예약한 사이트에서 '셔츠를 입어야 한다'는 문구를 보고 딸의 옷장을 다 뒤져 찾아낸 셔츠를 빌려 입었다. 3일 내내 같은 셔츠를 입었으며 골프채는 둘이서 사이좋게 번갈아 가며 쳤던 골프장은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것이다.
오후 8시가 훨씬 넘었지만 아직 해는 지지 않고 있었다. 여름 동안 저녁 9시가 넘어야 어두워지는 이곳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이 하루 중 15시간 정도 되었다. 7월 4일은 미국 독립 기념일이라 저녁에는 미국 전 도시에서 불꽃 축제를 하는데 포틀랜드에선 저녁 9시가 되어도 하늘이 훤하게 밝기만 하고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불꽃놀이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데 딸이 창밖을 보라고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위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첫 라운드를 축하해 주는 듯한 화려한 불꽃은 온몸이 쑤시고 피곤했지만 우주의 은하수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