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초입은 캄캄한 방 안이다. 몇 시인지 가늠할 수 없는 늦은 밤. 더블 사이즈의 침대에 30대 여성과 여자아이 둘이 옹기종기 누워있다. 세 명이 붙어 있지만 침대가 좁다는 느낌은 없다. 여성의 체구는 매우 아담하고 아이들은 그보다 더 자그마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들을 나란히 포개 봐야 겨우 성인 여성의 몸집 정도다. 당시의 나는 9살이었고 동생은 8살이었다. 엄마와 나, 동생이 왜 그날 밤 한 침대에서 함께 잤는지 아빠는 어디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껌껌했던 그 방의 장면만이 또렷할 뿐이다.
그날의 동생은 하루가 고단했는지 그르릉 코를 골며 침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쟤처럼 베개에 침은 안 흘려야지!’하고 다짐한다. 베개에 누런 침 자국이 남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 엄마가 곤욕을 치르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침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는다. 경쟁자 한 명이 꿈나라에 갔으니 엄마의 품은 내 차지다. 나는 그녀의 배를 꼭 끌어안으며 선잠에 빠졌다. 잠의 표면 언저리를 헤엄치고 있을 무렵,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다.
“우.. 웅..?” “......”
그녀는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다.
“왜 엄마?” "......"
엄마가 나를 힘주어 안는다.
나는 엄마 얼굴에 솟아 있는 가지런한 솜털들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렸을 땐 시도 때도 없이 그 솜털들의 촉감을 입술로 느꼈고 손가락으로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변태 같긴 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솜털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괴상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만지고 싶은 대로 만지거라~’ 하는 느낌으로 두 손 두 발 다 내려놓은 채 얼굴을 가만히 내주었다. 엄마들은 종종 어린 자식의 괴짜 같은 행동에 사랑스럽게 순종하곤 하니까.
불러놓곤 아무 말 없이 나를 꽉 안는 엄마의 온기에 문득 또 솜털이 만지고 싶어 졌다. 그녀 얼굴로 고사리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손에 따뜻한 물이 묻어 나왔다. "엄마, 울어?” 엄마가 울고 있다. 언제부터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긴 시간 혼자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베갯잇에서 짠내가 올라온다. 나는 그녀 품을 더 파고든다.
“엄마, 왜 울어..?”
이 질문이 그렇게 슬픈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더 끅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흐느끼는 어깨를 자분자분 토닥여 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엄마는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9살짜리가 이해하기에 다소 난이도 있는 문장들이었다.
이혼이라니. 당시 일일드라마에서나 간신히 접해본 단어였고 항상 부정적인 시나리오 전개에 쓰였던 소재였다.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사는 것이 이혼인가. 라고 어렴풋이 마음속으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어휘력은 짱구와 디지몬 세계에서 쓰이는 낱말로 채워진 딱 9살짜리 수준이었다. 때문에 엄마의 말을 완벽히 해석할 순 없었다. 그저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아빠가 우릴 떠났다는 것과 엄마가 그로 인해 많이 속상하다는 것.
그럼 앞으로 우리 셋이 살아야 하는 건가? 나는 아빠도 좋은데.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내 얼굴의 솜털들도 어느새 축축이 젖어있었다. 이 추근추근한 새벽이 지나가면 내일은 어떤 날이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엄마라도 놓칠까 그녀의 옷자락을 세게 쥘 뿐이었다. 그 감촉 말곤 어떤 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가끔 그날 밤의 엄마와 동생을 떠올린다. 엄마는 30대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고 동생은 온갖 오두방정을 떠는 촐싹이였다. 세상 행복하게 자고 있는 동생과 인생에서 큰 부분을 잃어버린 듯한 엄마. 같은 공간 속 심하게 벌어진 두 극의 사이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고작 9살짜리에겐 엄마 품에 안기는 게 최선이었다.
어린 딸들이 자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훌쩍였을 엄마를 이제는 상상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그녀를 감쌌을지 겨우나마 가늠해 본다.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말을 9살 딸에게 해야 했던 그녀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