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13년.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정확히 10살 때부터 진로를 점찍어 놨던 나는 이 대학이 마치 인생의 결승라인처럼 느껴졌다. ‘이 라인만 통과하면 내 인생은 완성된다.’ 뭐 이런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다. 원하던 학교의 대학생으로 입학하던 날, 나는 나를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었다.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들을 모조리 벗어 던지며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고 처음 만난 알코올은 지질한 수험생활로 지친 나를 흠뻑 적셔주었다. 그렇게 20살을 맞이했다.
짧은 수면 시간, 여고생의 기 싸움, 갓 데뷔한 엑소(설레서 공부가 안됐다.), 수능과 면접 등의 크고 작은 허들을 여차저차 거쳐 왔다. 이 허들을 뛰어넘었든 옆으로 슬그머니 피해서 왔든, 어쨌든 원하던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종착점이 아니었다. 종착점인 ‘척’하고 있는 기나긴 트랙이었다. 입학식 날까지도 몰랐다. 저 멀리 둠칫둠칫 춤추고 있는 또 하나의 허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까똑! [13학번 신입생들 모두 1강의실 1802로 저녁 7시까지 집합해라.]
입학한지 1주가 되던 때였다. 신입생 동기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과대가 학회장의 전달 사항이라며 집합 소식을 알려왔다. ‘무슨 일이지?’ 궁금함은 뒤로 하고 동기들과 삼삼오오 모여 강의실 1802로 향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캠퍼스를 걷는 일은 마치 3일 전 만난 타과 남자애와 썸을 타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었다.
그 당시의 우린 모두 20, 또는 그것을 갓 넘긴 나이였다. 재수생, 삼수생 또는 다른 대학을 다니다 온 동기들을 다 합해봐도 우린 꽤 많이 어렸다. 하늘같은 선배님의 말에 단정히 순응하는 어린 양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7시까지 강의실에 모였다. 강의실의 책걸상이 모두 뒤로 주욱 빼져 있어 수업을 들을 때 보다 훨 넓어 보였다. 모인 동기들이 둘러앉아 술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다가 걸린 사람은 벌칙으로 춤을 춰도 될 정도로... 잠깐, 춤?... 설마. 의식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치자, 때마침 강의실 앞에 팔짱을 끼고 선 학회장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3주 동안 매일 7시, 여기에 모여 춤을 연습한다.”
본 학교는 매해 4월, 1년의 시작을 알리는 큰 축제를 연다. 이 축제에는 한 가지 크나큰 행사가 있는데, 바로 모든 과의 신입생들이 군무를 추는 것이다. 옛날 옛적부터 내려오는 (반강압적)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입학한 모든 신입생들은 자기 과 동기들과 함께 몇 주간 빡세게 춤을 연습하고 무대에 오른다. 설상가상으로 댄스동아리 최고참들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모든 과의 군무를 평가하고 1-3등를 뽑아 상을 수여하는 시간도 있다. 1학년의 춤은 곧 모든 과 학회장들의 자존심이였다.
“우리 과가 3등 안에 든 건 4년 전 이었다. 올해는 꼭 3등 안에 들어야 한다.”
갑자기 강의실이 연예가중계에서 봤던 아이돌 연습실로 보였다.
물론, 강의실이 아이돌 연습실과 비슷하더라도 내 몸둥아리는 아이돌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내 몸은 역시나 내 것 이였다. 마지막으로 춤을 춰 본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학예회 날이다.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어겐~! 행복한 순간이야 해피데이~!”
당최 누가 입힌 건지 모를 파란색 배꼽티를 입고 엄정화의 페스티벌 노래에 맞춰 무대에서 두둠칫 춤을 추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춤을 상당히 연습시켰을 테지만 내 기억 속에 ‘연습한 기억’은 아예 없다. 아마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고달팠거나 수치스러워 뇌 속의 기억 세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나는 분명 상큼한 페스티벌 안무를 췄으나, 내 퍼포먼스는 가엾기 그지없었다. 9살 인생에 깨달았다.
‘나는... 춤을 정말 못 추는 구나.’
그 뒤로 쭉 춤은 보는 걸로 충분히 만족 해왔다. 정해진 동작에 따라 몸을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건 불가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보고 군무를 추라고? 그것도 3주 내내! 더군다나 잘 춰서 3등 안에 들어야 한다니! 이 상황에서 슬그머니 빠지고 싶었으나 다소 강압적인 요구에 우리 동기들은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당시 사회적 분위기로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당한 상황이다.)
원래 춤추기를 좋아하는 동기든, 나처럼 담 쌓고 지내는 동기든 우리는 모두 뒤섞여 한 팀이 되었다. 다들 어렵게 뛰어 넘어 온 허들 뒤 당도한 대학에서 이런 유치하고 요상한 허들이 앞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만난 지 겨우 일주일 된 사이였다. 이 팀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무대 곡이 정해졌다. 소녀시대의 I got a boy가 낙점됐다. 나의 캠퍼스 생활에서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허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