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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nama Aug 14. 2023

여전히 더운 건 싫지만

[Grinama] 독서기록 <아무튼, 여름>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만 나가면 비올 듯 쏟아지는 땀도 싫고, 숨 막히는 습기도 싫고, 시시때때로 들이닥치는 비도 싫다.


그럼에도 휴가랍시고 연달아 쓰는 연차가 다른 때보다는 덜 눈치 보이고 수영도 못하면서 구명조끼나 튜브에 의지해 떠다니는 물놀이는 싫지 않아서, 여름이 싫은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좋지 않다.


<아무튼, 여름>을 읽으려고 생각한 것은 올여름이 유독 힘들게 느껴져서였다. 이렇게 힘든 여름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하고.



살인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아침 출근만으로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이 책도 계속 미뤄도 될 것 같았다.

여름이 제아무리 사람을 죽일 듯이 더워도 매년 끝은 난다는 걸 30년 넘게 겪어왔으면서도, 더위가 너무 맹렬해서 마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나섰을 때 나를 감싸는 온도, 습도, 공기가 갑작스레 가을의 냄새를 풍긴다는 걸 체감한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만 것이다.


아니 뭐 이렇게 갑자기 끝나.




회사에 출근해 오늘은 좀 시원하지 않아요?라고 얘기를 꺼냈다가 전날이 입추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히 절기를 챙기거나 신경 쓰며 살아가지 않는 나로서는 절기가 이렇게까지 정확하다니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문득 <아무튼, 여름>이 생각났다.

아, 아직 그 책 못 읽었는데.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미뤄두던 <아무튼, 여름>은 아무튼, 여름에 읽을 작정이었다.

읽으려는 책들 중에 시기를 정해둔 것은 <아무튼, 여름> 뿐이었으므로 아무튼, 이 책은 여름에 읽어야 했다.

읽던 책들을 다 내려놓고 <아무튼, 여름>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8월 초니까.

완전히 여름이 끝나기 전에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의 치명적인 매력은 대체 무엇인가.






여름이었다.

한 때 이 문장이 유행이었다. 아무 문장이나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감성적이고 아련한 문구가 된다는 트윗으로 시작된 밈이었다.

그 얘기를 들려준 친구에게 그게 뭐냐며 웃었지만, 솔직히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여름에는 아련함을 남기는, 다른 계절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어려운 형편에도 바다로 가족여행을 떠나곤 했던 어린 시절의 여름날, 밖에서 실컷 놀고 돌아와 보면 반팔 반바지 자국대로 팔다리가 새까맣게 그을려 서로의 몸에 남은 경계선을 보며 깔깔 웃던 기억.

행복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그래도 어딘가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날들이 여름에 있었다.


처음으로 친구와 둘이 떠난 여행에서 밤바다에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한껏 낭만적인 젊은이 행세를 해보던 기억도 여름에 있다.


방학 동안 빈 오빠의 자취방을 독차지하고 생의 첫 짧은 독립을 체험하며 청춘의 자유를 맘껏 누려본 것도 그 어느 해의 여름이었다.


그리워한 것은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는 작가의 말처럼, 내게도 그리워할 여름의 내가 있었다.

가족들과의 여름휴가, 친구와의 바다 여행, 첫 독립.

지금은 쉽지 않거나 가능하지 않은 것들.

그것들이 모두 다 가능했던 날들.


그래, 여름이었다.






여름의 안녕이 도달하기 전, 맹렬한 더위로 인해 허덕이던 어느 날 에어컨이 빵빵한 방 안에 앉아 <아무튼, 여름>을 읽었다면 올해 여름이 조금은 덜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좋아하는 게 생긴다는 것은 인생이 얼마쯤 더 풍요로워진다는 의미이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물건,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식. 그런 게 하나씩 새로 생길 때마다 인생은 크고 작게 더 다채롭고 즐거워진다.

내년에 또다시 여름과 마주할 때, 조금쯤 여름을 좋아하게 된 내가 있다면.

아련한 여름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힘겨운 여름을 버틸 수 있다면, 이 폭력적인 무더위와 대적할 수 있는 낭만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무더위가 끝난 김에 생각해 본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내년 여름이 기대된다.





<아무튼, 여름> 리딩다꾸

https://www.instagram.com/p/Cv6tgCRBWcF/?igshid=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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