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글쓰는밤 2
일자 : 241112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일주일이 지났다. 한번 와본 길이라고 지도도 안 본 채 꼬불꼬불 갈래가 많은 골목을 용케도 잘 찾아왔다. 그 사이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쓴 글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나면 어쩐지 무언가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작은 것에 압도당하는 기분, 하염없이 주도권을 빼앗기는 기분. 독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글 쓰는 행위의 원동력이 되는 한편, 백지 앞에서 눈만 굴리는 정적인 상태를 만들어내기가 쉽다. 목적이 분명한 정보성 글이 아니고서야 독자를 생각하고 쓰는 작가는 아마 드물 것이다. 글의 생명력은 솔직함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읽는 사람을 의식하는 순간 그 글은 덜 솔직해진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 쓰는 글은 일기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시작되기 때문에 가장 날 것의 언어가 가장 적합한 곳에 자연스레 배치된다. 쓰고 보니 마음에 들어서 일기의 일부를 편집해 공유한 적도 꽤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쓰고 나서’ 편집을 했다는 점이다. 자꾸만 글을 써 내려가는 와중에 다듬다 보면 생각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툭, 툭, 걸려 버린다. 내가 가진 안 좋은 습관 중 하나가 바로 글을 쓰다 말고 앞으로 되돌아가서 처음부터 읽어내려 오는 것인데, 예뻐 보이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새 내용보다는 그럴싸한 형식만 갖춘 빈 깡통이 된다.
글을 쓸 때 잊지 말아야 하는 나만의 법칙이 있다. 나는 지난 글을 쓰기에 앞서 메모장에 작은 다짐을 써두었다.
‘보여주겠다는 생각 말고 그냥 글을 쓰자. 다듬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오늘은 그 법칙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주에 이어 또 다른 글 한 편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얽매여 빈 깡통에 가까운 글을 쓴 것 같다. 무엇이 솔직한 글인지 고찰하다 두 시간이 흘러버린 느낌이랄까.
나는 어마무시하게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최대한 잘 다듬어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멋지다고 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여러 번 읽어도 만족스러운 글을 펴내고자 하는 마음도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늘 쓴 것들이 제대로 된 글 한 편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명확한 소재 없이 너무도 의식의 흐름이었다는 것, 글감에 대한 내 생각에 스스로 확신이 있지 않았다는 것, 이 두 가지일 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어떻게 쓰고 싶은 글을 쓰겠나.
그렇지만.. 이런 날도 있으면 저런 날도 있는 거다. 마냥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때의 감각도,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단편도 그저 남겨둔다. 어쩌면 오늘 이야말로 어설프기 때문에 가장 솔직한 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