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naMilk Oct 08. 2023

7년 만의 Keep calm and carry on

에필로그.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실망과 기대감의 뒤섞임

7년 만의 영국이라 하면, 주변의 모두가 꽤나 놀래고는 했다.

그 반응에는 벌써 7년이 흘렀냐는 속절없이 무책임하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 자아내는 감탄사이며, 또한 어떻게 7년 동안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참 잘도 참았다와 같은 '대단해..'와 같은 반응이었다.

7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약 7년 동안 영국을 매일같이 그리워했다.

만 나이로 19살 때 떠난 유학을 마치고 24-25살쯤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영국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첫 3년은 영국이 내 고향이라도 되는 것처럼 향수병 아닌 향수병에 시달렸다. 한국에서 평생을 살다가 떠난 유학이었지만, 영국과 나는 매우 잘 맞았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은 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인연이었다. 런던의 모든 것이 그리웠다. 1년 정도 살았던 옥스퍼드와 그곳의 친구들, 그리고 런던의 공원과 자주 방문하던 식당, 학교의 캠퍼스, 자주 걸어 다니던 길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10대 때부터 유학을 보내달라고 떼를 쓰고, 설득하고 , 항의를 해도 부모님은 보내주지 않았다. 귀한 무남독녀이기 때문에 비행기 타고 10시간 15시간 떨어진 곳으로 여자애 혼자 보낸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냥 막연하게 외국에서 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영국 미국 드라마,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며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대주의적인 마인드로 서구 교육과 서구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심장을 뚫고 나올 것처럼 간절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얻게 된 기회를 통해 영국에 처음 도착 했을 때의 날씨와 나의 모습 그리고 가슴 뛰게 찬란했던 그 열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언젠가는 다시 영국에 돌아가 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한국에서 대학원도 가고 취직도 하고 사업도 하고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그냥 다시 한번 막연하게 언젠간 영국으로 돌아가겠어! 라며. 무엇보다, 사람한테 까다로운 나에게 새로운 세상과 우정을 알려준 친구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친구들 대부분이 교포나 영국에 자리 잡은 한인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나 혼자 몇만 리 떨어진 곳에서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 같이 외롭거나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30이 넘고 점차 삶의 안정을 찾아가고, 그 7년 사이에 급속도로 성장한 서울에 있다 보니 답답함과 외로움이 많이 사라질 때쯤 영국을 여행할 기회가 찾아왔으나 아쉽게도 2년이란 시간 동안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을 덮쳤다. 그 사이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편과 연애도 했고, 이제는 결혼도 했다. 한때 막연하게 '영국 시민권을 가진 남자'를 만나게 해 달라며 기도하던 그 기도에 응답이라도 받듯이, 그저 미국인으로만 알고 있던 남편이 영국 시민권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와 친구들의 반응은 '대박'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영국으로 이민을 갈 생각도 계획도 세워봤지만, 홀로 서울에 계셔야 할 부모님과 서울에 만난 인연들 그리고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감안하니 그냥 서울에 살며 한 번씩 영국으로 놀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던 중, 코로나가 잠잠해졌고 남편에게 나의 7년의 소원을 이뤄주는 비행기 티켓을 선물 받았다.


남편은 11년 만에, 나는 7년 만의 영국행.

3주라는 시간 동안 매일이 감동이었고, 만감이 교차하는 영국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누군가에게 공유해보자 한다.


7년 전, 그래도 여전히 영국이 탄탄히 '잘 사는 나라' 였을 때, 아니 미국과 쌍두마차라는 별명을 가지고 세계의 금융을 이끌어나가고 사회 복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그 시절 영국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것들을 시도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브렉시트가 시작될 무렵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떠나야만 했고, 눈물을 머금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로 영국은 많은 부분에서 하락세를 띄기 시작했다.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의사인 친구들, 뱅커, 공무원, 교육인, 영국 사회에서 교육받고 제대로 자리 잡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런던 시내를 하염없이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관련된 글과 책을 읽으며 착잡한 마음을 그들을 위한 축복과 기도로 승화했다.


런던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씁쓸하고 처량했지만 즐거웠다.


이제는 나의 제2의 고향이자 , 남편의 제2의 고향인 런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7년 만의 Keep calm and carry 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