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이들을 향한 수사
지구 반대편에서 제작되는 드라마와 뉴스 그리고 TV프로그램을 편안하게 집 혹은 내가 보고 싶은 장소에서 관람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자료와 프로그램은 넘쳐나고, 우리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작품을 선택해서 향유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국의 어두우면서도 예리한 첩보 수사물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곁들여져 있는 이야기를 즐겨 찾는다. 물론, 너무 어둡고 긴장감이 고조되는 작품을 연속적으로 보다 보면 극심한 불안감과 두통이 찾아올 때면(물론, 정말 빈지 와칭 즉, 정주행을 몇 주에 걸쳐했을 때...)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미국식 코미디나 유튜브를 시청하며 주변을 환기시킨다.
최근 몇 달은 영상 시청보다는 독서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독서와 점점 멀어지게 되는 나이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OTT플랫폼에도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다. 그렇게 우연히 쿠팡 플레이를 사용하게 되었고 영국 작품을 리서치하던 중 니콜라 워커(Nicola Walker)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영국 드라마 언포가튼은 2105년에 영국 ITV에서 방영되었다. 영국 드라마를 꾸준히 시청해 온 시청자라면 니콜라 워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포스터만 보고서도 그녀의 연기와 작품을 선택하는 탁월한 능력에 의지해 드라마의 첫 시즌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니콜라 워커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텔레비전 배우중 한 명이다. 수년 전 출현했던 스푹스(Spooks)를 비롯해 다양한 영국 드라마에 주연 및 조연으로 출연해 왔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자연스럽고 예리한 연기를 보여주는 이들이 많았다. 아무리 시나리오의 내용과 연출 및 배경, 음악 등 드라마나 영화를 완성하는 많은 부분들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배역을 맡은 연기자들의 연기가 부족하다면 완성도 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없을 것이다. 니콜라 워커가 맡은 DCI 캐시 스튜어트(Cassie Stuart)의 파트너로 활약하는 제시 제임스 역의 시네드 키난(Sinéd Keenan)의 연기를 보는 것도 큰 묘미다.
드라마 언포가튼은 실종 미제 사건(cold case)을 다시 재 수사하는 내용이다. 주로, 영국 도시에서 신원 불명의 시신이 발견되고, 캐시가 이끄는 팀이 현장에 도착해 시신을 확인하고 부패하거나 훼손된 시신의 주인을 찾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드라마이다. 이렇게 단순히 요약해 놓으면 그저 그런 '뻔한' 수사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나, 언포가튼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매 회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남겨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취조하고 심문하며 경찰 관계자들이 심리적으로 한계를 느낀다거나, 감정에 동요되어 눈물을 보인다거나, 경찰이라는 직업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마주하며 자신의 사명감과 소명을 다시 고민해 본다거나, 무너진 정의 앞에 분노를 표출한다거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수십 년 전의 미제사건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도 희생하는 진정한 경찰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사건을 풀어가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진 것이 아닌 주인공들의 사생활과 그 삶 속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사건과 함께 표현되는 장치를 통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한 개인 혹은 집단의 모습과 대비되는 선량한 시민 으로의 경찰들의 모습도 보여준다는 것이 이전의 수사물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또한, 결말까지 가기 위한 빌드업을 위해 사건과 관련되었던 이들이 수십 년이 지난 후 살고 있는 삶을 보다 보면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과 더불어 세상 어디선가 과거의 과오를 잊기 위해 하루하루 지옥 속에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죄를 직면할 의지와 용기조차 없는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과거에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함에 따라 자신의 실수와 잘못된 가치관을 참회하기 위해 유색인종을 돕는 일을 한다거나,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삶을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가 새삼 느끼게 된다.
나의 소중한 이가 어느 날 갑자기 뚜렷한 이유 없이 증발해 버렸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혹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면 여전히 한번씪 떠오르는 궁금증과 아픈 기억들.. 유족과 주변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날의 진실일 것이다. 모두가 잊어갈 때에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세상은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언포가튼은 현재 영국에서는 시즌 5까지 방송되었고. 2022년까지도 다양한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며 수상을 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쿠팡 플레이를 통해 시즌1부터 시즌5까지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