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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씨 Apr 19. 2017

사랑니를 뽑았다

다솜 방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장소는?



비밀번호 힌트에나 써있을 법한 이 질문에 나는 항상 치과 라고 답했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과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나에게 치과는 정말 그 어느 곳 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는 장소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가 선천적으로 약했던 나는 틈만나면 치과에 드나들었다. 그러다 어린 나이에 비해 큰 치료가 필요했고 기억을 더듬어보아 대학병원이었던 것 같다. 어렸던 나는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고 간호사 언니들은 내 몸을 줄로 '묶 었 다'. 난 그때 처음으로 치과에는 입을 벌리는 도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묶는 줄도 있구나 라는 걸 알았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줄에 묶여 몸부림을 치던 나는 바깥에 서있던 엄마와 잠시 눈이 마주쳤는데,

엄마는 울고 있었다.



무려 20년전 가까이의 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의 우는 모습을, 차갑고 차가웠던 기계소리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뒤로도 치과는 눈치없이 자꾸 나를 불러내었다. 이를 아무리 잘 닦아도 너는 이가 썩게 되어 있단다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은 어린 나에게 너무 충격적인 선고였다. 낭랑18세가 된 나는 머리가 커서일까, 이가 아파도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제때 치료를 안하면 더 안좋아질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어떻게 해서든 치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정도로 내 모든 똥고집을 다 쏟아부은 곳이 치과라는 곳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랑니가 나를 괴롭혔다. 어떻게 해서든 참아내고야 말았는데 이러다가 일에도 집중을 못하겠어서 심호흡을 몇번 하고 나서야 치과라는 곳에 내발로 찾아갔다. 하하를 닮은 의사선생님은 이미 사랑니가 잇몸을 뚫고 다 올라왔다고,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참았냐고, 이제 빼기만 하면 된다고 다 올라와서 크게 아프지는 않을거라고 하며 수술날짜를 잡으셨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사랑니를 꺼내어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사랑니를 뽑고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아픔을 참지 못해서 치과를 싫어한 게 아니었다. (아픈 건 솔직히 감기걸릴 때 엉덩이에 맞는 주사가 더 아프다.) 내가 그토록 치과를 싫어했던 건 그냥 내가 싫어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기 때문이다. 너는 우리 엄마도 울게 했고, 나를 줄로 묶어버려서 밤마다 악몽을 꾸게 했어, 평생 너를 좋아하지 않을테다!!! 라는 내 마음이 입력한 주문이었다.


그냥 나는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었던거다. 이를 잘 닦아도 치과에 계속 오게될거야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면 뭔가 더 약해질 거 같았나보다. 내 약한모습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게 싫어서 철저하게 멀리하며 지내왔다.


이를 뽑고 집에 돌아오면서 친구에게 '쓸데없이 뭔가 해낸 느낌이야' 라고 말했다. 이를 뽑아서도 그렇지만 뭔가 이제서야 내 마음 속 마취가 조금 풀린 것 같아서. 그래서 정말 쓸데없이 뭔가를 해낸 것 같다.


나는 오늘 사랑니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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