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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씨 May 16. 2017

머무름이 가져다 준 것

다솜 방


나를 찾지 않는 곳, 아니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3년 동안 쉴 틈 없이 날 괴롭혔던 대학교 방송국에서 벗어나 자유를 외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외국에서 한 달 동안 외국인들과 생활해보는 ‘워크캠프’는 짜릿한 해방이 되기에 충분했다. 여자아이 혼자, 프랑스 남부의 한 마을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위험해보였을 법도 한데 아빠는 쉽게 허락해주었다. 너를 믿으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오라는 말과 함께.      


혼자 발을 디디게 된 파리의 냄새는 생각보다 친근했다. 혼자 무거운 짐을 낑낑대고 있자 프랑스 아저씨는 내 짐을 들어주었고, 기차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프랑스 할머니는 빵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약 5시간을 기차로 이동한 뒤 드디어 팀원들을 만나기로 한 작은 기차역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뒤 “헬로우 아임 워크캠프..”하며 다가간 나에게 제일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해준 건 영국 남자아이였다. 프랑스, 영국, 브라질, 터키, 러시아에서 온 14명의 친구들이 나의 팀원들이었다. 팀 리더는 3주 동안 우리가 머물 곳을 소개해줬고,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그림 같은 텐트가 보였다. 이 들판에서 우리는 마음대로 눕고, 뛰놀고, 엎어졌고,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임무는 문화재로 지정된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햇볕이 적은 아침에 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만들어 성벽을 세웠다. 식사시간에는 각자 나라의 음식들을 직접 요리해주었고, 큰 나무 아래 옹기종기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이면 들판에 앉아 와인과 함께 음악파티를 열었다. 주말에는 수영장에서 다이빙 솜씨를 뽐내고, 피크닉을 가고, 불꽃놀이 앞에서 미친 듯이 춤을 췄다.      



3주의 시간은 정말이지 마법 같았다. 영어에 자신감이 없던 나는 친구들과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무언가에 신경을 쓰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다. 항상 웃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은 ‘스마일 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20년 동안 내 몸을 떠나지 않았던 아토피가 싹 사라졌다.      


2013년 여름은 남들처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제일 맘 편히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프랑스를 단순히 ‘관광’으로 왔다면 느끼지 못했을 사람들과의 부대낌, 온전한 휴식,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를 ‘머무름’을 통해 배웠다. 이 여행을 끝나고 다짐한 것은 하나, 머무르는 여행을 하자. 꼭 가봐야 하는 곳, 먹어야하는 것, 해야 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여행이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하자고.


머무름의 행복을 몸소 느끼게 해준 워크캠프 친구들과 마을사람들, 2013년의 여름이 더욱 보고싶어지는 날이다.



[트레바리 - 씀] ,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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