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왕조시대에나 있을법한 암행감찰이 미국에서는 지금도 각종 영업장에서 진행형이라면 믿을는지요? 미국에서 20년 동안 비즈니스를 하면서 우리 사업장을 찾는 손님을 보고 "혹여 당신이 암행감찰반은 아닐는지요?" 하며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았답니다.
현대판 암행어사가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각종 영업장에서 주 정부의 규율대로 영업이 준수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소비자들로부터 민원이 접수되면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별도의 암행감찰반을 내 보내기도 합니다.
암행어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 이웃에 누군가가 주 정부의 밀명을 받고서 손님으로 가장하여 지정된 영업장으로 나가
@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서비스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
@ 가격을 갖고 장난을 치지는 않는지를 확인 합니다.
@ 식당과 같은 음식점에서는 위생관리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는지
@ 편의점에서는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게 주요 임무다.
첫 번째 위반 시에는 경고와 더불어 일정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범칙금이 부과된다.
두 번째 위반 시에는 재교육은 물론 범칙금은 두 배가 된다.
세 번째는 쓰리아웃 three out으로 면허가 취소되어 업계에서 퇴출을 시킵니다.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서툴기만 했던 이민 초기. 그동안 직장생활(대기업 해외영업 부문) 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분야에 먹고살만한 것이 있다는 주위의 권유를 받고 자동차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여 자동차 매연점검 및 타이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해 보기로 결정을 했다. 학원을 다니는데 강사분이 instructor 수업 중 몇 차례나 나중에 현장에 나가서 일할 때 undercover 암행감찰반을 조심하라는 멘트를 하곤 했다. 이조시대도 아닌데 무슨 놈의 암행감찰반 이냐며 속으로 비아냥 거렸지요.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나서는데 강사분이 저를 별도로 부르더니만 "앞으로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암행감찰반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당부를 하였다. 왜 그랬을까 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안돼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보였을 것이고
@ 사무실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던 사람이 메케닉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든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다른 수강생들은 정비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 차립으로 학원에 나와 수업을 듣는데 나만이 유독 깔끔한 복장을 하고 앉아 있으니 그 모습이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만만치 않는 이쪽 분야에 일을 해보겠다고 여기 앉아 있을까? 하지는 않았을는지.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를 보면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 같은 인상이 풍긴다고 하던데 그 강사에게도 내 모습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띨띨하고 순해빠진 새끼를 보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가련하고 유약한 사람을 보면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은 문화가 다르고 피부색깔이 달라도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동차정비 업종에서 3-4년씩 근무 경력이 있는 메케닉들도 취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자격증을 자동차에 "자"짜도 모르는 사람이, 메케닉 DNA 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여 해냈다. 사람이 절박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이때 몸소 체득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을 해 보겠다고 샵을 오픈하고 나서 실무 경험이 전무한 사람에게는 너무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한국과 같이 현대, 기아 두 종류의 차량만 있다면 그까짓 것 몇 개월 공부하면 감당해 낼 수 있었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수십, 수백 종의 차량들이 유입되어 돌아다니고 있으니 매일 생소한 차량들을 접하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댔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지 출퇴근 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신생타령을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3개월쯤 되었을 때 30년 된 유럽차가 서비스를 받겠다고 우리 샵에 들어왔습니다. 차량 hood 보넷을 여는 순간 "세상에나 그동안 보도 듣지도 못했던 기이한 차량도 있구나 하면서 이를 어찌하면 좋아? "하고 당황했습니다. 저는 옆집 정비소로 달려가 메케닉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겨우 테스트를 마쳤는데 문제점이 발견되어 불합격을 시겼습니다. 손님은 옆에 앉아서 내가 옆집에 메케닉 도움을 받아가며 테스트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손님은 자기 차가 불합격 됐다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주 정부 직원이 찾아와 어제 제가 테스트했던 그 차량이 undercover 암행감찰반이었다고 알려준다.
경험이 미천 하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주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아니면 매뉴얼을 찾아서라도 잘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그래도 나를 살려냈다. 모르는 게 있어도 아는 체하며 얼렁뚱땅 넘겨서 그 암행감찰반의 차량을 합격이라도 시켜줬더라면 citation 경고처분을 받고 혹독한 대가를 치렀어야 했을 터이니까요.
용케 암행감찰반을 잡아내 위기를 모면했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지인들에게 했더니 그들은 이미 citation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사업을 허투르게 하면 미국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들 일러준다.
그중 한 분은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손님이 들어와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파리 한 마리가 손님 식탁에 앉았던 모양이다. 주인장을 부르더니 암행감찰반이라는 신분증을 보여 주면서 그만 citation 을 주고 갔다고 한다. 범칙금을 내고 재교육을 받느라 힘들었다면서 그 이후에도 주 정부 공무원이 수시로 찾아와 키친 청결상태를 확인하고 다녀 지금은 밥알이 바닥에 떨어져도 주어 먹을 만큼 깨끗하게 청결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다른 한 분은 liquor store 편의점을 운영하시는데 미성년자로 보이는 젊은이가 들어와 술과 담배를 달라고 하더랍니다. I.D. 신분증에 나이를 확인하고서는 술과 담배를 팔았습니다. (어린) 애 같은 젊은이가 편의점을 나가자마자 뒤이어 주 정부 공무원이 들어오더니 암행감찰 신분증을 꺼내 보이면서 조금 전에 다녀간 젊은이는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도용했는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주류를 팔았다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듯이 편의점 주인 또한 서양인들의 얼굴을 보면 그놈이 그놈 같아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기에 그만 낭패를 당했다는 얘기였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인간의 탐욕이 하나를 얻으면 두 개, 세 개를 넘 너다 보게 만든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무엇이 편법이고 불법인지 알면서도 이번 한번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어떤 손님은 서비스 요금의 열 배를 더 줄 터이니 불법으로 테스트 차량을 합격시켜 달라고 한다. 나를 유혹하는 방법도 그럴듯하다. 합격만 시켜 준다면 이 사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 좋은 제안입니다. 그러나 열 배는 충분하지 않아요. 백만 불을 주신다면 얼마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설령 자격증을 박탈당하더라도 그 돈으로 은퇴할 수 있으니까요." 손님들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도망간다.
많은 유혹과 탐욕으로 부패되기 쉬운 사회에 암행어사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아닐는지?